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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11 [6.10대회] 김진숙 지도위원 연설문
2009.06.11 15:53

[6.10대회] 김진숙 지도위원 연설문


지난주에 쌍용차엘 다녀왔습니다.

공권력투입에 대비해서 곳곳에 바리케이트를 쌓아놓은 모습만 아니라면,

노동자들의 얼굴에 언뜻 언뜻 스치는 막막한 눈빛만 아니라면,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공장의 모습이 이래야 하는 거 아닌가 싶게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아이와 공놀이를 하는 아빠. 그 뒤에서 아이의 잠바를 들고 서있는 엄마.

벚나무에 매달려 아들과 함께 버찌를 따고 있는 아빠들.

그들이 말합디다.

짤리고 나니까 이제야 아이들과 놀아줄 시간이 생겼다고.

자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빠가 다녔던 공장을 이제야 들어와본 아이들

주황색 수건을 목에 넥타이처럼 걸고 뛰어다니는 아이들.

 


그 수건엔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일곱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중엔 장난감 자동차를 손에서 떼지 못한다는 네 살짜리 주강이도 있었을 겁니다.

자동차를 만드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 주강이의

아빠는 짤렸습니다.

아빠처럼 자동차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던 주강이는 이제 어떤 꿈을 꿀까요.

친구들과 함께 유치원 졸업사진을 찍는 게 소원이라는 일곱 살 선기의 아빠도

짤렸습니다.

그 소원을 이룰 수 없게 된 선기는 이제 어떤 소원을 품게 될까요.

생사가 갈린 등기 우편봉투를 들고 온 우체부를 돌려보내고 후들거리는

가슴을 안고 주강이의 엄마는 얼마나 울었을까요.

일곱 살짜리 아들에게 유치원을 갈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선기의 엄마는

얼마나 죄스러웠을까요.

새끼들과 깃들 집을 장만하기 위해 야간근무를 하고 휴일특근을 했던 애비들이

죄인이 되는 세상.

아이들 학원 보내기 위해 잔업을 했던 애비들을 기어코 울게 만드는 세상.



그들은 이제 공권력이 투입되어 사지가 들린 채 개처럼 끌려 나가면

10년 20년을 하루같이 드나들었던 공장에 한발짝도 들여놓을 수가 없을 겁니다.

그리고 그들의 일자리는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게 될 거고, 그들은 기륭전자가 그렇고

동희오토가 그렇고 수많은 하청노동자들이 그렇듯 비정규직의 삶을 살게 되겠지요.

그리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 한 주강이나 선기도 비정규직이 될 겁니다.

그제서야 뼈가 저리겠지요.

왜 비정규직 문제가 중요했던가를.

왜 그들과 연대하지 않으면 안되었던가를.

그리고 박종태라는 사람을 비로소 눈여겨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남편이 되고 싶었고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던 한 사내의 꿈을 이루는 게

얼마나 힘겨운 세상이 되었는지를 온몸으로 겪게 되겠지요.

 

제가 박종태 동지를 만난 건 3년 전이었습니다.

다음 해에 다시 만났을 때, “작년에 봉께 물을 많이 드시드마요이” 말하던 그의

손엔 큰 물병 하나가 들려 있었습니다.

잠시 행복했습니다.

이런 착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이 일을 버티게 하는 보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같은 편이란 것만으로도 이일은 옳은일이라고 뿌듯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후. 제 휴대폰 컬러링을 다운받을 수 없겠냐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라 그 전화를 잊었고, 그가 죽고 나서야 그 생각에

사무쳤습니다. 그 음악, 돈데보이를 이제야 들려줍니다.

그가 우리에게 베풀었던 세심함의 반절만이라도 그에게 돌려주었더라면

그가 그렇게 죽었겠습니까.

그가 우릴 믿었던 신뢰의 십분의 일만이라도 그에게 보여주었더라면 열 살,

여덟 살 새끼들을 두고 그렇게 가버렸겠습니까.

혜주랑 정하랑 눈에 밟혀서 뭐라고 얘기하지. 그런 유서를 썼겠습니까.

낮에 계족산에 갔는데 당신한테 말을 남기고 가야할 거 같아서 종이하고 볼펜 가지러 다시 내려왔어.

온몸이 부르르 떨려. 십년을 살아 온 마누라에게 이런

유서를 쓰고 목을 맸겠습니까.

굴뚝이나 크레인에 올라가야 신문에 한줄 실리는 현실.

단식 50일이 넘어가야 중집회의 안건이 되는 현실.

사람이 죽어야 전국 노동자 집회라도 한번 열리는 현실.

저는 이명박이 보다 우리들의 이런 무감각이 더 무섭습니다.

같은 공장에서 비정규직이 폐업을 당해도 정규직은 일을 하고,

정규직이 짤렸는데도 비정규직이 일을 합니다.

화물연대 노동자가 죽으면 화물연대 동지들만 울고 끝내는

최복남이 박상준으로 이어지고 박상준은 김동윤으로 이어지고

김동윤은 박종태로 이어집니다.

 

22년 전 오늘. 그때 가야에서부터 좌천동까지 넘실거리는 사람의 파도로

물결쳤던 건 노동자라는 물방울들이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지금의 촛불들처럼 깃발하나 없이도 하나가 되었습니다.

인터넷이 없었어도 당연히 서면으로 모였고, 모이자는 문자를 뿌리는 조직이

없었어도 하루에 삼십만이 모였습니다.

두 달 넘게 저녁마다 쫒고 쫒기면서도 아무도 조직의 피로도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서면시장 아지매들은 주먹밥과 보리차를 날라왔고, 자갈치시장 아지매들은

최루탄과 백골단에 쫒기는 사람들을 가게에 숨겨주고 김밥과 환타를 내주었습니다.

버스와 택시노동자들은 시위대를 보면 경적을 울리며 주먹을 흔들어주었고

승객들은 차안에서 박수를 치다가 차가 막히면 내려서 시위대가 되었습니다.

그때 우리가 맞섰던 정권은 광주에서 수천 명을 학살하고 집권한 정권이었고

박종철을 대공분실에서 고문으로 때려죽인 정권이었고 이한열을 최루탄을 정조준해서 죽인 정권이었습니다.


열사람이 모여도 사과탄 지랄탄이 우박처럼 쏟아졌고 거리 곳곳에서 불심검문이

행해져 집회엔 와보지도 못하고 잡혀가는 일이 일상사였습니다.

그래도 모였습니다.

집회장소엔 전경들이 먼저 와서 사람벽을 치면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둘러싸 경찰들이 포위되는 일이 여기저기서 이어졌고 사과탄 지랄탄이 날아오르면

그걸 끝까지 쫒아가 밟아 꺼버리는 용감한 사람들이 꼭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린 이겼습니다.

살인정권의 무릎을 꿇게 하고 독재정권을 마침내 감옥으로 보냈습니다.

그땐 학생과 노동자가 다르지 않았고 정규직 비정규직이 따로 없었습니다.

신발공장 노동자와 금속노동자가 다르지 않았고 병원노동자와 사무직노동자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그땐 철거민도 노동자였고 노점상도 동지였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모두 하나였고 억압받는 모든 이들이 동지였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세상을 바꾸는 주체일 수 있었습니다.




집이 헐린 용산 철거민의 아이가 140일째 아빠의 시신이 안치된 영안실에서

학교를 다닌답니다.

47일째 파업을 이어가는 전기원 노동자들이 투쟁기금이 없어 비오는 날

차안에서 라면을 끓여먹습니다.

3만 명의 전노협시절에도 없었던 일이 80만의 민주노총 시대에 벌어지고

있다면 우리가 말하는 평등세상, 인간해방이 누구를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작년 거리를 뒤덮었던 촛불의 진정성을 우리가 배우지 못한다면

우린 고립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탄압과 억압을 겪으며 어느새 관료화된 지도부로부터 조직을

조합원 대중에게 돌려주는 역동성을 회복하지 못하면 우린 고사할지도 모릅니다.

 

촛불만 보면 기겁을 하고 경기를 하는 이명박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맙시다.

내각을 개편하라니까 쓰레기차를 보내고 똥차를 끌어다놓고

정책기조를 바꾸라니까 대운하를 4대강 정비사업으로 바꾸는 게

2메가 바이트의 수준입니다.

못알아듣는데 자꾸 얘기하는 것도 실례라고 봅니다.

한사람 때문에 모두가 불행하다면 결국 그 한사람의 종말도 불행해진다는 게 역사였습니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싸운다면 결국 세상을 바꾼다는 게 이 땅 민중들의 지혜였습니다.

모두 하나 된 투쟁으로 이 명박 정권 박살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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