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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9.28 1년 365일, 하루 24시간을 투쟁하는 일반노조!
  2. 2009.07.23 "이명박 정권 물러가라" 1500여 조합원 총파업 결의대회 가져 (1)
  3. 2009.06.03 노무현 '동지'를 꿈꾸며...(김진숙지도위원 편지글) (4)
2009.09.28 11:19

1년 365일, 하루 24시간을 투쟁하는 일반노조!

또 터졌다.
하루 24시간도 모자랄 만큼 늘 투쟁이 끊이질 않는 부산지역일반노동조합에 보람상조현장지회가 결성됐다.
고객을 내부모와 형제처럼 정성을 다하는 기업‘ 보람상조에서는 노동자들이 쉬는 날도 없이 일을 하고, 명절이라고 고향에 가는 이가 없고, 3개월 6개월짜리 계약서를 쓰면서도 군소리 없이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남들 사는 것처럼 살아보자 싶어 노동조합을 만들었더니 ’고객의 꿈과 행복을 추구하는 기업’ 보람상조에서는 부당 전보와 해고도 모자라 자기 직원의 맨얼굴에다가 가스총을 난사했다.
보람상조 직원들에게는 삶의 작은 여유와 행복을 꿈 꿀 수는 권리조차 없는 것인가 보다.

 
하느님의 종 보람상조 대표, 그가 전하는 하느님의 사랑은?

서울과 각 지역을 돌려 순회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보람상조 동지들은 매주 일요일이면 부산 이기대공원 입구 주찬양교회앞에서 집회를 가진다.
주찬양교회는 보람상조 대표가 직접 만들고 장로로 있단다.
100평 가까이 되는 아파트에서 자신의 직원을 파출부 쓰듯 부리고,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직원들을 하루아침에 해고하고, 벌써 몇 날 몇 일을 길거리에서 농성을 이어가는 직원들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보람상조 대표.그가 전하고 실천하는 하느님의 사랑은 대체 어떤 것일지 사뭇 궁금할 따름이다.
주찬양교회앞에서 만난 보람상조 동지들은 노동조합을 만든지 불과 한달 여만에, 해고와 거리투쟁까지 이어가고 있음에도 여유가 있고 씩씩해보였다. 그만큼 그들의 요구가 정당하고 당당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많지 않은 대오이기는 하나, 일반노조답게 집회는 끈질기게(?), 하지만 신명나게 진행됐다.
더러는 마이크를 잡고 그동안을 울분을 토해내기도 했고 몇몇 조합원들은 등산을 가는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누기도 했다. 유인물을 받아든 시민들 중에는 뉴스나 언론을 통해 보람상조 투쟁을 접해보신 분들이 계셨던지 “회사가... 못쓰겠네..” 하셨다.
그러자 집회 대오 옆으로 서있던 검은 양복의 남자들이 다가가 팔짱을 끼더니“그게 아니라, 저희가 다시 설명을 해드릴께요” 어쩌구 저쩌구.검은 양복 앞 가슴팍에 “상담”이렇게 쓴 명찰이 붙어있다. 보람상조 직원이란다.
애가 닳았다. 보람상조.


우리나라 대표 상조업체 보람상조, 노동조건은 최악!

보람상조는 부산 동래에서 단층짜리 건물로 시작하여 19년 차인 현재는 영업직원만 3700여명, 회원수 70만의 전국최대 규모의 장례서비스 회사다.
또 최근에는 유명한 연기파 배우를 앞세워 가족같은 이미지로 대대적인 공중파 방송을 통해 현재 대표적인 상조업체로 우뚝 섰다. 실제로 보람상조는 타 상조업체에 비해 가장 많은 회원수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직원수는 가장 적다.
업무는 대게 팀별로 운영되는데, 각 지역별로 한 팀정도가 운영되는데 의정부, 영등포, 성남, 시흥, 천안, 대전, 원주, 전주, 광주, 진주, 울산, 대구, 부산 13개 팀이 있다.
많은 팀은 10명 정도이고, 부산 같은 경우 6명, 울산은 고작 2명으로 운영 된다.
이 인원으로 그 지역의 장례업무를 다 도맡아 하게 되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3억여원의 광고비를 들여 채용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말 또한 믿을 수가 없다.
설사 그렇게 채용이 된다 하더라도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나간다.
3개월, 6개월짜리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뒤 회사의 입맛대로 해고와 채용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회사에 조금이라도 밑 보이면 다음 고용은 장담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일이 워낙 힘들다 보니 제대로 버티는 사람이 없다.
그것은 곧 근로환경이 열악하다는 반증이다.
이에 노동조합에서는 직원을 채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고용을 안정화시키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단순히 먹고 살라고 하는 일이면 이렇게 못하죠~ 사명감입니다!

사실 처음 상조업체에 노동조합이 생겼다고 했을 때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일까 궁금했다.
집회현장에서 만난 조합원들은 대체로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영업을 하시는 분들인가?
“조합원은 장례지도사와 장의 차량을 운전하는 승무원들로 구성됐습니다.
장례지도사는 옛날말로 장의사로 생각하면 쉽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대게 장례지도사들인데 전반적인 장례절차를 알려주고, 도와주는 사람들로 빈소 마련에서부터 입관 및 출상까지의 일을 맡아 하죠“ 이부길 현장대표의 설명이다.
“이 일이 무척 고달프고 힘든 일입니다.
시신을 씻기고 염을 하는 일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쉬운일이 아니거든요.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만이 아니라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죠. 또 육체적으로도 힘을 써야 할 일이 많다 보니 나이가 들면 힘들어서 하지도 못해요~ 저렇게 젊은 직원들도 들어오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다들 나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보람상조 직원들은 24시간 대기근무를 한다.
고객의 장례가 접수가 되면 1명의 장례지도사가 분향소를 설치하고, 입관작업하고 제사상을 차리고 출상때까지 장례에 필요한 전반적인 일을 도맡아서 한다.
이렇게 하면 장례 1건당 2~3일정도가 소요된다.
다른 상조업체들은 보통 한달에 10건 정도를 처리하게 되는데, 보람상조의 경우 한달에 평균 35건을 처리한다.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다른 상조업체들이 2~3일 한 장소에서 머물면서 하는 일을 보람상조 직원들은 장소를 옮겨다니며 여러 건을 동시에 처리한다.
그러다보니 휴일은 꿈도 못 꾼다. 그렇다고 시간외 수당이라던지 휴일수당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사람이 살다보면 몸이 아플수도 있을테고, 집안에 경조사가 생길수도 있지 않을까? 최소한 그정도의 휴일은 보장되겠지 싶어 현장대표에게 물어보았더니 돌아오는 답은 간단했다
우리요? 그런거 없습니다”
아니, 그래도 몸이 아플수도 있지 않나요.
“ 없다니까요~”


최소한의 요구, 돌아온 것은 해고와 부당전보

하루 24시간을 일을 하고, 한달에 집에 들어가는 일이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고, 시간외 수당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더라도, 차라리 그런 일은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의 양심과 자존심을 팔 수는 없었다.
그동안 회사는 직원들로 하여금 회원들이 상중에 경황이 없는 틈을 이용해 애초 계약된 상품외의 다른 부가 상품을 팔 것을 강요했다.
우리나라 사람들 정서상, 마지막 가는 길에 가능하면 좋게 편하게 보내고 싶어하시잖아요.
특히 돈문제로 옥신각신 하는게 고인을 혹시라도 욕보이게 할까봐 크게 토를 잘 안다시죠."
그러다보니 억지 춘향격으로 상품을 더 이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할때면 얼마나 곤욕스러운지 모릅니다. 회사는 고객의 슬픔을 이용하고, 직원들을 앵벌이에 이용해서 돈 챙기기에만 급급할 뿐이죠“
그래서 노조에서는 앞으로 이러한 회사의 각종 부조리에 대해서 함께 알려 나갈 계획이다.
물론 이런 것이 보람상조현장지회입장에서도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회원이 많이 나갈 수도 있고, 회사가 일정부분 어려워 질 수도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은 회사가 곤란 할지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이것이 궁극적으로는 회사를 살리는 길이라 생각한다.
투명한 경영을 통해 회원들과 직원들이 함께 행복해지는 것이 노동조합의 바램이다.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보람상조현장지회는 2009년 6월 13일 노동조합이 결정되고 70여명이 조합원으로 출발하였다.
그러나 회사는 지부장에 대해 지방 센터로 발령을 내는 등 탄압을 시작하여 각 팀장들로 하여금 온갖 회유와 협박을 통해 개별 조합원들을 탈퇴시켰다. 그 과정에서 늘 그렇듯이 회사는 노동조합 탈퇴만 하면 모든 요구조건은 들어주겠다며 온갖 회유와 협박을 동원했다. 그래서 초반 70여명의 조합원에서 현재는 부산과 수도권(성남, 시흥)의 조합원 19명이 남아 있는 상태다. 그나마도 9명이 해고 되었고, 9월 4일 또 일방적인 징계위원회를 개최하여 2명을 더 해고통보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노동조합을 탈퇴했던 조합원들은 현재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그 사람들과의 관계가 껄끄럽지는 않냐는 물음에 이부길 현장대표는 그럴 것도 없단다.
“ 동참하지는 못하지만 우리와 뜻을 같이하고 동조하는 다른 직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비록 개인적인 사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탈퇴하셨던 분들도 있지만, 그 분들도 우리와 같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모금을 하여주시기도 하고 격려도 많이 해주십니다“
노동조합 결정 한달여 만에 해고와 거리투쟁까지 이어가고 있는 보람상조 동지들이 가장 힘든점은 아무래도 금전적인 부분일 것이다.
주중에는 수도권 및 각 지역별 센터로 옮겨다니며 투쟁을 하다보니, 투쟁 경비가 많이 든단다. 거디다 조합원의 대부분이 가장이다 보니 당장의 생계비도 걱정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 불만 없이 잘 견뎌 내주는 것이 가장 고맙다는게 이부길 현장대표의 말이다.
조합원들 대부분이 노동운동의 노자도 모르던 사람들이예요.
그런데도 부산과 여러 지방을 옮겨다니는 힘든 투쟁 일정 속에서도 불평 불만 없이 잘 따라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죠. 물론 각자의 소신과 생각들이 있고, 그동안의 분노가 지금 여기까지 우리를 이끌어준 것이 가장 큰이유지만, 지부장인 나를 믿고 잘 따라주는 것이 너무나 고맙습니다“

 
이제 며칠 후면 민족의 대명절 추석이다.
모두들 그렇겠지만 이들도 처음 시작할 때는 여기까지 오게 될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이번 추석에는 이들이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까?
그들이 추석을 어떻게 맞을수 있을지는 우리의 몫이 클 것 같다.
집회 말미 일반노조 사무국장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 독사의 자식들아! 회개하라."
독사의 자식같은 보람상조 대표는 회개하고, 노동조합 인정하라던 그는 보람상조 대표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독사도 함께 다스려야 겠다고 했다.
일요일만큼은 집에서 좀 쉬고 싶고, 그동안 미뤄뒀던 더 급하고 많은 일이 있기도 하지만, 연대는 그런 바쁘고 어려운 상황속에서조차 조그만 마음을 나누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연대하지 않는 마음, 
우리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그 독사를  몰아내고 보람상조 투쟁 뿐만 아니라, 부산지역의 현안사업장 투쟁에 힘차게 결합 할수 있도록 바래본다.

 

★보람상조 노동지부 카페
http://cafe.daum.net/boramnodong
★보람상조 노동지부 후원계좌
입금계좌:571501-01-211115   (국민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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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3 11:43

"이명박 정권 물러가라" 1500여 조합원 총파업 결의대회 가져


"이명박 정권 물러가라"

민주노총 부산본부는 1500여 조합원이 참가한 가운데 22일 오후 2시 30분 부산시청에서 ‘비정규법, 미디어법 등 MB악법 저지, 쌍용차 문제 해결 촉구, 공기업 구조조정 저지 민주노총 부산본부 총파업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결의대회에 참가한 조합원들이 낸 한목소리는 ‘이명박 정권 물러가라’였다. 민주노총 총파업 투쟁의 이유였다.

본대회 개최 전 특별한 투쟁보고를 가졌다. 투쟁보고는 금속노조 정관지역지회 SPX현장위원회 문제였다. 노동조합을 만든지 2달. 투쟁조끼를 입었다고 출근이 저지된 것이 무단결근이되어 조합원 전원이 해고된 것. SPX 현장위원회 대표는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측은 노동자에게 줄 돈은 없어도 노동조합을 깨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 용역경비를 채용하며 노동조합을 탄압했습니다. 결국 오늘자로 조합원 전원이 징계해고 됐습니다.”며 “이제부터 본격적인 투쟁을 전개할 것입니다. 동지들 함께 지켜봐주시고 연대 해주십시오.”라고 분노와 연대를 호소했다. 참가한 조합원들은 SPX현장위원회 대표의 발언에 연대투쟁으로 답했다.


SPX현장위원회 발언이 있은 후 총파업 결의대회는 시작됐다.
김영진 본부장은 대회사를 통해 총파업 투쟁을 반드시 승리로 만들기 위한 조합원의 결의를 당부했다. 소통을 거부하고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정권, 노동자의 생존을 말살하는 정권을 노동자의 총파업 투쟁으로 몰아내자고 주장했다. 대회사가 끝난 이후에는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차해도 지부장의 투쟁사가 진행됐다. 차해도 지부장은 쌍용자동차 자본이, 상하이 자본이 노동자를 노동자의 가족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자본과 공권력의 폭력적 태도를 규탄했다. 아울러 쌍용자동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폭력적 진압이 아닌 공적자금을 투여해 회생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차해도 지부장의 발언이 끝나고는 일터의 힘있는 문화공연이 진행됐다. 문화공연을 통해 조합원들은 다시금 총파업에 대한 결의를 다졌다. 마지막 발언은 부산일보 이호진 지부장의 발언이 진행됐다.
이호진 지부장은 미디어악법이 통과되면 노동자 서민의 목소리는 언론상에서 이야기 되지 않을 것이라며 언론악법의 문제점을 명확하게 지적했다. 아울러 언론악법은 조중동 보수우익언론이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고, 재벌이 언론을 장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산일보 지부장의 발언이 끝나고는 투쟁결의문 낭독 시간을 가졌다. 결의문에는 총파업 투쟁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민주노총으로 단결해 이 투쟁을 승리하자는 결의였다. 아울러 25일 쌍용차 관련 전국노동자대회에 힘있는 참가도 결의했다. 투쟁결의문이 끝나고 상징의식으로는 얼음에 각종 악법과 이명박정권을 형상화해 이를 깨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얼음이 주변의 더위를 식히듯 MB악법을 반드시 저지해 노동자 서민의 삶을 시원하게 하자는 결의를 모으는 시간이었다.

결의대회 모든 행사를 마친 참가대오는 서면 천우장까지 행진을 하고 천우장에서 정리집회를 가졌다. 정리집회에서는 진보신당 부산시당 위원장과 민주노동당 부산시당 위원장의 발언이 있었고 함께 연대 투쟁하고 이명박 정권을 몰아내는 데 힘있게 투쟁할 것을 밝혔다. 정리집회 하는 도중 미디어 악법은 한나라당에 의해 강행처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참가자들은 바로 22일 저녁 서면 쥬디스태화에서부터 투쟁을 결의했다. 아울러 23일 한나라당 집중 투쟁도 결의하면서 모든 대회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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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ournfl.us/ BlogIcon Authentic NFL Jerseys 2012.11.05 12:1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She often awakened in his sleep 열악한 노동조건, 천우장, 해고

2009.06.03 12:26

노무현 '동지'를 꿈꾸며...(김진숙지도위원 편지글)

집회도 없고 수련회도 없는 휴일은 외려 잠이 일찍 깨요.
아무 일도 없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언제부터 저는 평화가 실감나지 않는 삶을 살게 된 걸까요.
아무 일도 없는 이상한 토요일.
아니나 다를까. 텔레비전 화면에 뉴스속보가 뜨는군요.
“노무현 전 대통령 뇌출혈로 입원”
검찰조사가 시작되면 입원으로 시작해서 휠체어나 마스크가 구명보트처럼 등장하는 꼴을 늘 봐오긴 했습니다만
당신은 그런 쇼를 할 사람은 아닌지라 스트레스가 어지간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10여분 후 “노무현 전대통령 사망한 듯”이라는 자막이 뜨고 그제서야 뒹굴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나날이 일구 우일구하기 여념없는 시시껍절한 방송이 중단되고 속보가 이어지더군요.
경호원, 사저뒤편, 부엉이 바위, 세영병원, 양산부산대병원, 심폐소생술, 열상 따위의 일상과 밀접하지 않은
단어들이 바퀴벌레처럼 툭툭 튀어나와 소름을 돋게 했습니다.
정신적 공황상태까진 아니었지만 불면 탓으로 약간 멍한 채로 이틀을 보냈고 월요일 아침 부산역까지 가긴 했으나 조문은 못하고 역 광장을 몇 바퀴 빙빙 돌다 왔습니다.
선뜻 신발을 벗고 절을 하는 문상객들의 거리낌없는 몸놀림이 참 부럽다고 생각하며.
잠이 안오대요.
다음 날 다시 부산역엘 갔습니다.
역 광장을 또 빙빙 돌다가 그냥 돌아가면 다시 닥칠 불면의 밤이 성가셔
문상객들의 뒤에 얼른 붙어 섰습니다.
방명록에 몇 줄 쓰기도 했습니다. 잠을 자야하니까.
“오랜 세월 동지였고 짧은 시간 적이었습니다.
90년 변호사 접견 오셨을 때처럼
봉하마을 어딘가에 앉아 각자의 위치가 만들어 낸
그동안의 원망과 미움들을 두런두런 털어낼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곧..
고맙고 죄송합니다.“
 
90년. 제가 첫 징역을 살 때였습니다.
접견을 오셨었지요.
보통 변호사 접견은 재판 전날 와서(사실 재판 전날도 안 오는 변호사도 많습디다만)
재판절차를 일러주고 이빨도 맞추고 하는데 재판날짜와는 아무 상관없는 시기였던지라
많이 의아했던 만큼 20년 전인데도 이리 생생하네요.
접견실에 먼저 오셔서 기다리시더군요.
보통은 재소자들이 한 시간 이상씩 주리를 틀면서 기다리는데.
요샌 교도소 반찬이 뭐가 나오냔 얘기, 여사에선 뭐하고 노냐는 얘기, 변호사가 해주던 징역살이 얘기, 남사에선 뭐하고 논다는 얘기,
법무부 시계도 가니까 재밌는 놀이를 많이 개발해서 징역을 잘 깨라는 얘기.
변호사가 접견을 와선 재판이야긴 한마디도 없이 노닥거리기만 하다 그 더디기로 유명한 법무부시계가 세상에 한 시간이나 흘렀습니다.

“가야겠네” 일어서시길래 하도 황당해서 물었습니다.
“왜 오셨어요?”
“진숙씨 징역살이 힘들까봐 놀아 줄라고 왔지요”

그리고 당신은 정치권으로 갔고,
정치권으로 갔다는 건 권력을 탐하는 변절로 규정하는데 한치의 주저함도 없었으니
변호사비용을 거침없이 떼먹고도 사기꾼의 돈을 떼먹은 것 마냥 일말의 부채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복직하면 갚으마. 유전 발견하면 갚으마. 보물선 찾는대로 갚으마. 막연한 약속이 선임비였던 시절이었으니.
그게 인권변호사의 당연한 책무였으니.
이제와 생각해보니 상실감이었어요.

그 시절 당신은 우리들의 유일한 빽이었는데.
공돌이 공순이 편을 들어주는 가장 직책 높은 사람이었는데.
당신이 있어 우린 수갑을 차고도 당당할 수 있었는데.
그때 직감적으로 생각했어요.
이제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니겠구나.
재판장 앞에서 수갑을 찬 채 잔뜩 주눅 든 우리를 향해, “피고인은 무죕니다.”
외쳐 줄 사람이 이젠 없겠구나.
이제 재판에서 지더라도 찾아가 울 데도 없겠구나.
노동자들이 그들의 부엉이바위인 크레인 위에 올라갈 때 따라 올라가지도 않겠구나.

그리고 당신을 잊었습니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없어서 혼자 진행했던 1심 재판에서 당연히 지고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왜 항소를 안했어요?” 라는 질문에 “항소가 뭔데요?” 라고 되묻던 저에게
“노동자가 항소를 알면 그건 노동자가 아니지.” 하던 말도 잊었고,
노동자도 이론이 있어야 세상을 바꾼다며 함께 했던 소모임도 잊었고,
군사정권 시절 해고된 노동자의 그 막막한 눈빛을 들여다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유일하게 내 얘기를 그대로 들어주던 무료법률 상담소도 잊었고,
어느 날은 밤에 오라 길래 밤에 찾아갔더니 그날이 전태일이라는 노동자의 기일이라고
변호사 사무실 구석에 조촐한 제상을 차려놓고 아무 말도 없이 유령들처럼 절을 하던
그 뭉클하던 밤도 잊었고,
함께 같은 거리를 달리던 6월 항쟁도 잊었고,
최루탄 가루가 싸락눈처럼 내린 범냇골 국민운동본부 옥상에서 막걸리를 나누던 걸판지던 뒤풀이도 잊었습니다.

그리고 침례병원이 초량에 있을 때였습니다.

노동조합 조합원 교육에 초청을 받았는데 앞 시간 강사가 당신이었더군요.
당신은 내려오고 나는 올라가던 계단에서 마주쳤습니다.
난 참 어색하기가 짝이 없습디다.
그냥 모른 척 할라고 했습니다만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지요?”
굳이 손까지 내미시더군요.
그때 대답을 했거나 웃기라도 좀 했으면 지금 잠을 이루기가 좀 쉬었을까요.
 
그리고 당신이 출마한 대선에서 전 4번을 찍었습니다.
단 한 번도 단 한순간도 고민하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외포리를 한번도 벗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평생 1번을 벗어난 적이 없는
큰언니가 전화를 했더군요.
“이 노무헤니가 그 노무헤니지? 니 벤호사. 그 사람 찍었다. 너 인쟈 깜빵 안가지? 복직두 되갓지?” 얼른 대답할 말이 떠오르질 않더군요.

제가 왜 “내 변호사”를 놔두고 4번을 찍었는지 우리 큰언닌 죽을 때까지 이해 못할 거예요.
2번과 4번의 극심한 차이를 설명하는 일도 이리 막막한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그 미세한 차이를 설명하는 일은 저의 재주로는 난망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기뻐서 우는 사람도 있습디다만 이회차이가 당선된 거보다 노무혀이가 당선된 게 노동자들에게는 더 힘들 거라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고립은 깊어졌고 고착화되었습니다.
김영삼이가 당선되었을 때 운동권이 1/3이 떨어져 나갔고, DJ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른바 재야가 사라졌고,
당신이 대통령이 되면서는 그야말로 오롯이 노동자들만 남았습니다.
한 사업장에서 수천 명이 한꺼번에 해고될 때 그 무지막지한 자본을 향해 호통쳐주는 어른 하나 없습디다.
노동자들이 핏발 선 눈으로 거리로 나설 때 역성들어주기는커녕 죄 우리만 나무랍디다.
그거 아세요. 당신은 조중동이랑 열심히 싸우셨습니다만 우리에겐 조중동이랑 한편처럼 보인 거.

 “야~ 기분좋다!” 시며 봉하로 가셨을 때 오리농법보다 더 중요한 일은 농민들의 삶의 실상을 들여다보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왜 목숨 걸고 한미 FTA를 반대했는지.
그리고 전용철, 홍덕표 그들의 죽음에 당신이 늦게나마 사과를 하면 참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랬다면 제가 봉하마을을 갔을까요. 아마 갔겠지요.
그리고.. 김 주익 얘기도 했을까요. 아마 그 얘긴 못했을 거예요.
말로 꺼내긴 크나큰 상처였으니까.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 말씀.
유난히 노동자들에겐 가혹하셨습니다.
2003년도 한진중공업에서 저는 한꺼번에 두 명의 지기이자 동지를 잃었습니다.
김 주익은 600여명 조합원의 명퇴에 맞서 2년을 싸웠고 노사가 합의를 했고
그 합의를 회사가 번복을 했고 그래서 크레인에 올라갔고 그 크레인 위에 129일을 매달려 있다가
아시다시피 목을 맸습니다.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런 시대는 정말 지났을까요.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들에게 종종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조각인 것을..

저는 당신을 부정한 게 아니라 당신을 넘어서고 싶었습니다.
착한 사람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지배가 없는 세상을 꿈꿨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시대에 그 꿈은 가장 허황되고 지리멸렬해졌습니다.
때론 우리가 품은 꿈이 너무 초라했고 궁색했습니다.
당신의 시대에 가장 많은 노동자가 짤렸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구속됐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비정규직이 됐고
그리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귀족으로 격상됐고 그들은 언론과 자본은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조차 적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이기주의를 꾸짖으십디다만 동료가 수백 명씩 짤리는 걸 목격한 노동자가 비정규직에게 내밀 손이 남아 있겠습니까.
저 살아남는데 써야지.

징역을 살 때 만난 사형수가 있었어요. 이 여잔 영치금이 한 푼도 없는 개털이었는데
새로 신입이 들어오면 아주 불쌍한 표정으로 샴푸나 속옷을 사달라는 거예요.
출소한 사람들이 쓰다만 물건들도 다 그 여자 차지였죠.
언제 죽을지 모를 사람이 사소한 물건에 집착하는 게 도덕의 눈으로 보자면 참 추접스럽습디다.
그 여자 집행되고 보니 샴푸나 속옷 나부랭이가 구석구석에서 쏟아져 나옵디다.
백분의 일도 못쓰고 죽었죠. 생에 대한 나름의 집착이었던 거죠.
샴푸 생길 때마다 빌었겠죠. 이거 다 쓰고 죽자.
정규직 노동자들은 삶의 벼랑에서 그런 심정으로 잔업하고 철야를 합니다.
얼마가 남았을지 모를 정규직의 삶을 그딴 식으로 저축하면서.
그 무렵쯤이었을 거예요.
변호사비용을 이제 그만 갚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당신의 시혜나 은전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 건.
적이 될 거라면 호적수이고 싶었습니다.
실력도 한참 모자라고 열정도 전만 못하고 진정성마저 잃어 그리 되진 못했습니다.
그게 참 부끄러워요.
똑똑한 사람들은 다 떠나 우리를 속속들이 아는 가장 무서운 적이 되었고 남은 자들은 동네북이 되어
초딩들마저 두들겨대고 천덕꾸러기가 되어 크레인엘 올라가고 굴뚝엘 기어 올라가도 언놈 하나 눈길주는 놈이 없어졌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고등학교 밖에 못나온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입 달린 사람은 죄다 침이 마릅디다만
고등학교도 못나온 저 같은 노동자들은 당신의 시대에 대부분 절감해야 할 원가가 되어
구조조정 당했고 효율화를 위해 비정규직이 됐습니다.
차라리 군사독재 시절엔 대드는 노동자만 짤렸으나 당신의 시대엔 남녀노소가 짤렸습니다.
서민의 벗이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나 부자와 빈자의 간극은 훨씬 더 까마득해졌습니다.
당신이 변호사에서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24년의 세월 동안 전 아직 복직도 못한 해고노동자로 찌질한 50대가 됐습니다.
생각해보니 짧은 시간 동지였고 오랜 세월 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뜨겁고 바른.
만고 씰데없는 소립디다만 그래서 대통령 같은 거 하지 말았으면 참 좋았겠단 생각
지금도 해요.

불안하고 불길한 기운으로 떠돌던 예감이 당신의 죽음으로 확연해집니다.
한 시대가 갔다는..

이제 상고출신이 변호사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양양한 가도가 보이고 그 길을 편하게 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의 있습니다!”
외칠 때, 그 외침에 뒤돌아보는 사람도 이제 더는 없을지도 몰라요.

만 명이 울어주면 천국에 간다했던가요.
천국에 가셨을 거라 믿어요. 진심으로.
김주익 곽재규 배달호 김동윤 최복남 이용석 이해남 이현중 정해진 하중근 박수일 허세욱..
당신의 시대에, 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서러움으로 억울함으로 목 놓아 울었던
죽음들입니다.

당신처럼 벼랑 끝에 내몰렸던..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죽음을 당신이 이해해주길 바란 적이 있었어요.
하도 야속해서. 노동자의 삶을 안다는 사람이 어찌 저럴 수가 있나 너무 미워서.
아무리 야속하고 미워도 그런 바람은 품지 말걸 그랬다 싶어요.
애증도 부질없어 졌습니다.

언젠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말들이, 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말들이 기형도의 시처럼
떠돌다 때때로 부딪히겠지요.
이제 변호사비용은 영원히 안 갚아도 되게 생겼습니다.
 
다음 생에 오실 땐, 너무 똑똑하게 오지 마시구려.
사법시험 같은 것도 합격하지 마시구요. 그냥 태생대로 기름밥 먹는 노동자로 만났으면 해요.
저는 당신에게 변절이라 손가락질 할 일 없이, 당신은 절더러 경직되었다거니 세상을
모른다거니 한심해 할 일 없이. 떠날 일도 보낼 일도 없이 그냥 내내 동지로.
그래서 언젠가 하셨던 말씀대로 자본가가 지는 해라면 노동자는 뜨는 해다.
그 멋진 말씀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순수한 열정, 남다른 정의감 그대로 만날 수 있길.
다시는 미워할 일도 상처 받을 일도 이렇게 미어질 일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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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3 Comment 4
  1. Favicon of http://www.cyworld.com/happyacupuncturist BlogIcon dook 2009.06.05 14:2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너무 감동적인 글 감사드립니다. 저는 엘에이 삽니다. 평균적으로볼때 미주한인사회가 워낙 보수적이라 몇명 안되는 지인들이나 이런 글에서 조금씩 힘을 얻고 갑니다. 참 갈길이 멉니다...

  2. 구름 2009.06.05 17:4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프레시안을 통해서 글을 읽었습니다. 우리가 정말 아파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보고 분노하고 눈물을 흘려야하는지 너무나 명쾌하게 지적해주셨습니다. 노동자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꼈습니다.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멈출수가 없었습니다. 김진숙님, 건강하게 지내십시오. 그리고 고맙습니다.

  3. 자전거 2009.06.06 12:2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퍼 갈께요.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4. 루아 2009.06.09 23:4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진솔하게 가슴에 와서 울리는 글입니다. 잘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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