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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9 21:05

민중의 분노, 밤하늘에 솟아오른 거대한 불꽃

류장현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10월 16일 밤 8시, 남포동 부영극장앞.

부산에서 가장 번화한 도심에서 경찰차를 태우며 하늘로 치솟는 거대한 불꽃. 수만명 군중이 ‘독재타도, 유신철폐, 언론자유’를 목이 터져라 외치는 함성이 내눈앞에 펼쳐졌다. 길가의 모든 파출소는 보이는 족족 박살났다. 세무서, 동사무소, 언론사, 민주공화당 사무실에는 분노한 군중들의 돌팔매가 퍼부어졌다. 이날 아침 10시, 부산대학교 수십명의 학생들이 시작한 ‘데모‘는 수천 학생들의 봉기가 되어 시내로 물밀 듯이 쏟아졌다. 하루도 지나지 않은 그날밤, 시내 한폭판에서 수만명의 군중들이 분노를 쏟아내는 거대한 민중항쟁으로 타올랐다.

<1979년 부마민중항쟁 당시> 거리로 나온 학생들과 박수치는 시민들

그 열하루 뒤인 1979년 10월 27일, 18년 동안이나 혼자 대통령을 해먹던 박정희가 심복이었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지금의 국가정보원 원장)가 쏜 총에 맞아 죽었다는 라디오 뉴스를 들었다.


1961년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고 1979년까지 대통령을 지낸 박정희는 ‘수출지상주의’를 내걸었다.
물건을 만들어서 외국에 팔려면, 기술력이 없었던 당시로는 값싼 물건이 만들어져야 했다. 당연히 저임금이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에 쌀과 곡물류는 저가격을 유지했다. 삼성 등 재벌들은 값싼 외국산 밀가루를 수입하여 떼돈을 벌었으나 농민들은 망해갔다. 벌어먹고 살기위해 농민들과 자녀들은 도시로 도시로 밀려들었다.

마산에는 박정희 정권의 비호아래 외국기업이 한국의 노동자들을 값싸게 부려먹는 ‘수출자유지역’이 만들어졌다. 부산에는 국제상사, 화승그룹 등 수만명을 고용하는 신발공장, 합판공장등 수출용 공장들이 이루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에게는 절망이었다. 하루 12시간 이상의 중노동에 시달렸으나, 근로기준법이 있는 지도 몰랐다. 노동조합은 법상으로 어용노총인 ‘한국노총’만 허용되었다.

1970년 11월, 서울 평화시장 재단사였던 전태일 열사가 환풍도 안되고 허리도 굽혀지지않는 다락방 공장에서 15시간씩 고되게 일하던 봉제여성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개선시키기 위해 투쟁하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고 외치며 분신자결하였다.

1979년 8월 9일, 가발 수출업체인 YH무역의 여성노동자 200명은 회사폐업에 맞서 회사정상화를 요구하며 당시 야당이었던 ‘신민당’사에 들어가 농성을 벌였다. 박정희정권은 그들이 ‘산업전사, 수출역꾼’으로 부르며 칭송했던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농성 4일째 8월 11일 새벽2시, 1,000여명의 무장경찰을 최루탄을 쏘며 신민당사로 진입시켰다. 이과정에서 22살의 김경숙 여성노동자가 건물에서 떨어져 살해당했다.
당시 야당 당수있던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10월 4일, 다수당인 공화당의 표결처리로 국회의원에서 제명당했다.
1979년,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장시간노동뿐아니라 상급자들에게는 노예처럼 취급받았다. 더구나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2차 석유파동으로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


1980년대 광주민중항쟁 당시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선배, 친구와 함께 박현채 교수의 ‘민족경제론’등을 읽고토론했다. 전태일열사 이야기를 들으면 노동자의 고통을 전해들었다. YH무역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외침이 무장경찰에 의해 도륙당하는 모습을 목격하였다. 박정희 정권에 대항하던 야당 당수의 국회의원 제명도 목격했다.
‘독재타도’는 생존의 길을 찾는 민중의 외침이었다.
‘유신철폐’는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간선제로 뽑고, 데모도 못하게 하는 권력에 대한 처절한 분노였다. ‘언론자유’는 노예처럼 부림을 당하는 민초들의 외침을 광야에 퍼지게 하자는 자유의 외침이었다.
젊은 청년들의 외침이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남포동에서 수만군중의 함성과 불길로 솟아오를 때, 잠시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나 최루탄과 페퍼포그를 쏘며 경찰에 맞서 돌팔매와 빈병을 집어던지며 거대한 저항으로 타오르자 ‘희망을 만드는 힘이 가까이 있구나’ 하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30년이 지난 지금,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생존의 위한 처절한 투쟁, 군중의 촛불과 권력의 탄압, 임금이 깍이고 길거리로 쫒겨나는 노동자들. 일자리가 없어 청춘을 그냥 삭혀야 우리의 아이들.
여전히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한가운데 있는 내가 거대한 민중의 불길을 다시 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작년 여름 광장을 뒤덮었던 촛불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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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10 Comment 2
  1. 김화수 2009.10.14 14:4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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