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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익'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9.28 '애자'를 보셨나요?
  2. 2009.06.03 노무현 '동지'를 꿈꾸며...(김진숙지도위원 편지글) (4)
  3. 2009.05.06 이것도 나라인가! - 김진숙지도위원 119주년 메이데이 부산역 연설문 (3)
2009.09.28 14:14

'애자'를 보셨나요?


조남호 회장님!
공사다망하신 분이라 별 기대없이 하는 질문이긴 합니다만, 혹시 ‘애자’라는 영화를 보셨는지요?
만약 그 영화를 보셨다면 같은 하늘아래 같은 세대를 사는 ‘우리’가 유일하게 같이 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애자라는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더군요.
어린 시절 장면을 보니 저랑 좀 비슷하기도 해서 뜨끔한 장면도 있긴 했습니다만 근본적으로는 다릅디다.
고분고분하진 않은 한마디로 부모 애깨나 좀 먹이던데, 급기야 홀어머니가 딸내미 담임 선생님께 불려 갑니다.

“우리 아가 문제가 좀 있십니까?”
“딴 걸 다 떠나서 야가 비오는 날은 학교를 안 옵니다”
“니 학교 간다카고 나가서 어데로 갔노?”
“바다”
“뭐어? 바다? 바다는 말라꼬 가는데?”
“시 쓸라꼬”


비 오는 날 학교를 안가는 건 저랑 비슷하고 시 쓰러 바다를 가는 건 달랐습니다.
저는 우산이 없어서 학교를 못 갔거든요.
우산이 없어서 학교를 못 갔다. 혹시 이런 말이 이해가 되시나요?
가난한 시골의 그것도 형제 많은 집에서(참고로 저희 집은 5형제 였습니다만) 비가 온다든지, 한날 한시에 소풍을 간다든지, 같은 날 미술시간이 들었다든지, 체육시간이 겹친다든지 어쨌든 그런 저주 받은 날의 등굣길의 풍경을 상상이나 하실 수 있을런지요?(방금 인터넷을 찾아보니 다행히도! 회장님 댁도 5형제시군요!)
다른 날은 꾸물럭대던 언니들이나 동생이 그런 날은 어찌나 잽싼지 살 부러진 우산이나마 장검처럼 꿰차고 나가버리면 참 막막하지요.
부모님들도 이미 나가고 안 계시니 어디다 하소연할 데도 없고, 30년도 훨씬 더 지난 일입니다만 쓰다보니 그 막막함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어쨌든 때때로 막막한 아침을 맞아야 했던 아이들은 자라서 대부분 회장님의 종업원이 되었을테고 그 막막함을 한 자락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은 같은 5형제라도 전혀 다른 세상을 살며 그들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애자’에서 제가 유난히 꽂힌 장면이 있었습니다.
엄마가 병들어 시한부의 삶을 살게 되자 딸내미가 엄마가 운영하던 동물병원을 정리하게 됩니다.
처분할 건 처분하고 실어 낼 짐들도 대충 실어내고 나자 그 병원에 서너 마리의 개가 남겨집니다.
그 병원에서 일했던 이에게 이달치 월급과 퇴직금까지 지급한 후 애자가 묻습니다.

“언니야, 이럴 경우 야들은 우째야 되노?”
“그냥 다들.. 안락사 시킨다”

애자는 냉장고에서 약품을 꺼내 주사기에 재고는 그 강아지들을 끌어안고 한참을 웁니다.
하물며..개한테도 그럽디다.
말을 할 줄 모르니 애원을 한 적도 없는 개한테도 그럽디다.
생산성에 기여를 한 적도 없고 자본을 축적하는데 어떠한 잉여가치도 창출한 적이 없는 개한테도 그럽디다.


쌍용차 사장님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함께살자’던 노동자들을 끝내 내치는 과정에서 여섯명이나 목숨을 잃게 만들었던 쌍용차 사장님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노동시간을 줄이고 임금이나 복지를 줄여서라도 정리해고만은 막겠다던 노동자들 2646명의 생존을 기어이 빼앗았던 쌍용차 사장님은 무슨 마음이었을까요?
그들의 절규와 울부짖음을 헬기소리와 오, 필승 코리아로 무찔러 버렸던 그 사장님은 이겨서 아주 기쁘셨을까요?

 

아시다시피 한진중공업의 임단협이 아직 끝나질 못했습니다.
여름휴가를 넘기지 않는 게 관행이었습니다만 올핸 추석을 넘길 조짐마저 보입니다.
노조간부들은 석 달 째 철야농성중입니다.
부당한 일을 당하면 모여서 고함이라도 지르고 머리를 맞댈 수라도 있는 그들은 차라리 행복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작년 연말 상여금이 아직도 꿩 구어먹은 소식이고 하루가 멀다하고 일자리가 사라지는 하청노동자들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딛는 심정일 겁니다.


2003년. 아직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아니, 기억하신다면 이러실 리가 없을텐데 말입니다.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두 사람이나.. 죽었습니다.
한진중공업에서 청춘을 바친 늙은 노동자들을 굳이 600명이나 자르겠다는 회장님의 방침만 아니었어도, 그들은 지금쯤 부모님의 묘소에 벌초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을 겁니다.
그들을 복직시키겠다는 약속을 회장님께서 지키기만 했어도 그들은 노동조합의 임기를 마치고 오늘 같은 일요일은 개콘을 보겠다는 아이들과 리모컨 쟁탈전이나 벌이며 하냥저냥 나이들어 가고 있겠지요.
600명을 짤라내지 않으면 회사가 곧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습니만 결국 두 사람의 목숨값으로 20년 전에 짤린 노동자들까지 (저만 제외하고!) 복직을 했습니다만 회사는 안 망했습니다.
30억을 들여 식당이 지어지고 복지회관이 지어지고 일방중재조항들이 폐지되고 삼십여년을 가로막아 왔던 불통의 장벽이 그렇게 하나하나 허물어져가고 상식이 들어서는 듯 보였습니다.
불안한 평화는 그렇게 5년이 시한부였습니다.



회장님!
한번 자유의 맛을 본 사람은 다시 노예로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이건 제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어떤 유명한 사람이 한말인데 누군지 기억나진 않는군요.
5년 전. 두 사람이나 목숨을 바쳤던 건 그런 이유였습니다.
해고되고 구속되고 그렇게 싸워가며 우리는 고통만 맛보는 건 아닙니다.
인간이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몸으로 깨치고 그렇게 깨친 자유와 정의에 대한 의지는 목숨보다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그걸 지킬 수 있을 때라야 우리가 인간일 수 있는 까닭입니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77일을 한결같이 외쳤던 것도 그 말일 것이고 그 명쾌한 목소리들이 우리에겐 들리는데 그 말을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들이 그들의 지배자였다는 게 이 시대 노동자들의 비극입니다.
저는 회장님께서 우산이 없어 학교를 못 가는 건 이해를 못하시더라도 이 말만큼은 부디 이해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한진중공업에서 임단협이 길어진다는 건 단순히 날짜의 지루함만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불길한 전조. 혹은 전운..


포항에 진방스틸이라는 공장에서 부당해고에 맞서 1년을 넘게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그 회사를 부산주철관이 인수를 하면서 이 노동자들이 한 번씩 부산으로 투쟁을 하러 오는데 그런 날은 우리 사무실에서 묵어가곤 합니다.
씻을 데도 마땅찮고 누울 데도 마땅찮은 공간에 모기는 들끓으니 얼마나 고역이겠습니까.
며칠 전에도 이들이 다녀갔는데 예순다섯명이나 되는 사내들이 수도꼭지 두 개 달린 남자 탈의실에서 씻을라면 밤을 새워도 못 씻을테니 여자탈의실까지 침범을 했다가 변태로 몰릴까 급했는지 증거를 미처 인멸을 못하고 흘리고 갔습디다.
시커먼, 그것도 한겨울에 신는 군용담요 같은, 그것도 뒷꿈치가 뻥 뚫린 양말.
첨엔 신경질이 나서 씨불씨불 하다가 갑자기 좀 쓸쓸해지더군요.
여자탈의실에 뒹구는 뒷꿈치가 뚫어진 남자 양말처럼.
그들은 그 두꺼운 양말이 뚫어질 때까지 얼마나 헤매고 다녔을까요.
그 양말마저 잃어버리고 맨발인 채로 그들은 또 어디로 갔을까요.
몇 달을 집에 못들어 간 한진중공업 노조간부들도 이 밤 탈의실 구석에서 고랑내 나거나 뚫어진 양말을 그 성긴 손으로 주물주물 빨고 앉아 있겠지요.
뚫어진 양말을 신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양말이 뚫어지도록 일하는 사람들을 종종 적으로 내몰곤 합니다.
그럼 그들은 적이 될 수 밖엔 없을 겝니다.
회장님께서는 선친으로부터 돈과 명예와 권력뿐만이 아니라 그런 유전자까지 물려 받으셨을테니까요.
김 진숙이라는 인간을 직접 본 적도 없으면서 뿔 달린 빨간 괴물로 인수인계 받으셔서 한진중공업에는 범접할 수 없는 혐오동물로 낙인을 찍으셨듯이.


애자’ 마지막 장면에 보니 그 강아지들이 결국 살았습디다.
저는 가슴을 쓸어 내렸습니다.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고 애자 혼자 쓸쓸히 집에 돌아오는 장면이었는데 전 그 장면이 참 따뜻했습니다. 
회장님!
곧 추석입니다.
저는 오늘 외포리 큰언니한테 못 간다고 전화를 하고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다 돌아가셔서 큰언니 큰형부가 저한텐 부모님이고 그분들이 고향에 계셔서 명절 때면 가곤 했습니다.
남동생이 몇 년전 객사를 하고, 비오는 날이면 그 많던 형제들 중 부모님 차례를 모실 형제가 저 밖엔 없어 제가 가야 그나마 부모님 차례라도 지냅니다.
한진노조 간부들, 그리고 일자리를 잃은 한진 하청노동자들, 그들 중에도 고향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겠지요.
제가 그렇다고 철야농성을 함께 하는 것도 아니고 짜달시리 뭐 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냥 미안해서요. 당신들을 이해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 그러니 너무 쓸쓸해하지 마시라.
그거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2003. 김주익 지회장은 크레인 위에서 혼자 추석을 쇴지요.
주익씨 그렇게 가버리고 그게 그렇게 미안하고 부끄럽습디다.
고향에 다녀온 게...

회장님!
며칠 후면 다시 추석입니다.
부디 추석 잘 쇠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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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3 12:26

노무현 '동지'를 꿈꾸며...(김진숙지도위원 편지글)

집회도 없고 수련회도 없는 휴일은 외려 잠이 일찍 깨요.
아무 일도 없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언제부터 저는 평화가 실감나지 않는 삶을 살게 된 걸까요.
아무 일도 없는 이상한 토요일.
아니나 다를까. 텔레비전 화면에 뉴스속보가 뜨는군요.
“노무현 전 대통령 뇌출혈로 입원”
검찰조사가 시작되면 입원으로 시작해서 휠체어나 마스크가 구명보트처럼 등장하는 꼴을 늘 봐오긴 했습니다만
당신은 그런 쇼를 할 사람은 아닌지라 스트레스가 어지간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10여분 후 “노무현 전대통령 사망한 듯”이라는 자막이 뜨고 그제서야 뒹굴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나날이 일구 우일구하기 여념없는 시시껍절한 방송이 중단되고 속보가 이어지더군요.
경호원, 사저뒤편, 부엉이 바위, 세영병원, 양산부산대병원, 심폐소생술, 열상 따위의 일상과 밀접하지 않은
단어들이 바퀴벌레처럼 툭툭 튀어나와 소름을 돋게 했습니다.
정신적 공황상태까진 아니었지만 불면 탓으로 약간 멍한 채로 이틀을 보냈고 월요일 아침 부산역까지 가긴 했으나 조문은 못하고 역 광장을 몇 바퀴 빙빙 돌다 왔습니다.
선뜻 신발을 벗고 절을 하는 문상객들의 거리낌없는 몸놀림이 참 부럽다고 생각하며.
잠이 안오대요.
다음 날 다시 부산역엘 갔습니다.
역 광장을 또 빙빙 돌다가 그냥 돌아가면 다시 닥칠 불면의 밤이 성가셔
문상객들의 뒤에 얼른 붙어 섰습니다.
방명록에 몇 줄 쓰기도 했습니다. 잠을 자야하니까.
“오랜 세월 동지였고 짧은 시간 적이었습니다.
90년 변호사 접견 오셨을 때처럼
봉하마을 어딘가에 앉아 각자의 위치가 만들어 낸
그동안의 원망과 미움들을 두런두런 털어낼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곧..
고맙고 죄송합니다.“
 
90년. 제가 첫 징역을 살 때였습니다.
접견을 오셨었지요.
보통 변호사 접견은 재판 전날 와서(사실 재판 전날도 안 오는 변호사도 많습디다만)
재판절차를 일러주고 이빨도 맞추고 하는데 재판날짜와는 아무 상관없는 시기였던지라
많이 의아했던 만큼 20년 전인데도 이리 생생하네요.
접견실에 먼저 오셔서 기다리시더군요.
보통은 재소자들이 한 시간 이상씩 주리를 틀면서 기다리는데.
요샌 교도소 반찬이 뭐가 나오냔 얘기, 여사에선 뭐하고 노냐는 얘기, 변호사가 해주던 징역살이 얘기, 남사에선 뭐하고 논다는 얘기,
법무부 시계도 가니까 재밌는 놀이를 많이 개발해서 징역을 잘 깨라는 얘기.
변호사가 접견을 와선 재판이야긴 한마디도 없이 노닥거리기만 하다 그 더디기로 유명한 법무부시계가 세상에 한 시간이나 흘렀습니다.

“가야겠네” 일어서시길래 하도 황당해서 물었습니다.
“왜 오셨어요?”
“진숙씨 징역살이 힘들까봐 놀아 줄라고 왔지요”

그리고 당신은 정치권으로 갔고,
정치권으로 갔다는 건 권력을 탐하는 변절로 규정하는데 한치의 주저함도 없었으니
변호사비용을 거침없이 떼먹고도 사기꾼의 돈을 떼먹은 것 마냥 일말의 부채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복직하면 갚으마. 유전 발견하면 갚으마. 보물선 찾는대로 갚으마. 막연한 약속이 선임비였던 시절이었으니.
그게 인권변호사의 당연한 책무였으니.
이제와 생각해보니 상실감이었어요.

그 시절 당신은 우리들의 유일한 빽이었는데.
공돌이 공순이 편을 들어주는 가장 직책 높은 사람이었는데.
당신이 있어 우린 수갑을 차고도 당당할 수 있었는데.
그때 직감적으로 생각했어요.
이제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니겠구나.
재판장 앞에서 수갑을 찬 채 잔뜩 주눅 든 우리를 향해, “피고인은 무죕니다.”
외쳐 줄 사람이 이젠 없겠구나.
이제 재판에서 지더라도 찾아가 울 데도 없겠구나.
노동자들이 그들의 부엉이바위인 크레인 위에 올라갈 때 따라 올라가지도 않겠구나.

그리고 당신을 잊었습니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없어서 혼자 진행했던 1심 재판에서 당연히 지고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왜 항소를 안했어요?” 라는 질문에 “항소가 뭔데요?” 라고 되묻던 저에게
“노동자가 항소를 알면 그건 노동자가 아니지.” 하던 말도 잊었고,
노동자도 이론이 있어야 세상을 바꾼다며 함께 했던 소모임도 잊었고,
군사정권 시절 해고된 노동자의 그 막막한 눈빛을 들여다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유일하게 내 얘기를 그대로 들어주던 무료법률 상담소도 잊었고,
어느 날은 밤에 오라 길래 밤에 찾아갔더니 그날이 전태일이라는 노동자의 기일이라고
변호사 사무실 구석에 조촐한 제상을 차려놓고 아무 말도 없이 유령들처럼 절을 하던
그 뭉클하던 밤도 잊었고,
함께 같은 거리를 달리던 6월 항쟁도 잊었고,
최루탄 가루가 싸락눈처럼 내린 범냇골 국민운동본부 옥상에서 막걸리를 나누던 걸판지던 뒤풀이도 잊었습니다.

그리고 침례병원이 초량에 있을 때였습니다.

노동조합 조합원 교육에 초청을 받았는데 앞 시간 강사가 당신이었더군요.
당신은 내려오고 나는 올라가던 계단에서 마주쳤습니다.
난 참 어색하기가 짝이 없습디다.
그냥 모른 척 할라고 했습니다만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지요?”
굳이 손까지 내미시더군요.
그때 대답을 했거나 웃기라도 좀 했으면 지금 잠을 이루기가 좀 쉬었을까요.
 
그리고 당신이 출마한 대선에서 전 4번을 찍었습니다.
단 한 번도 단 한순간도 고민하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외포리를 한번도 벗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평생 1번을 벗어난 적이 없는
큰언니가 전화를 했더군요.
“이 노무헤니가 그 노무헤니지? 니 벤호사. 그 사람 찍었다. 너 인쟈 깜빵 안가지? 복직두 되갓지?” 얼른 대답할 말이 떠오르질 않더군요.

제가 왜 “내 변호사”를 놔두고 4번을 찍었는지 우리 큰언닌 죽을 때까지 이해 못할 거예요.
2번과 4번의 극심한 차이를 설명하는 일도 이리 막막한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그 미세한 차이를 설명하는 일은 저의 재주로는 난망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기뻐서 우는 사람도 있습디다만 이회차이가 당선된 거보다 노무혀이가 당선된 게 노동자들에게는 더 힘들 거라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고립은 깊어졌고 고착화되었습니다.
김영삼이가 당선되었을 때 운동권이 1/3이 떨어져 나갔고, DJ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른바 재야가 사라졌고,
당신이 대통령이 되면서는 그야말로 오롯이 노동자들만 남았습니다.
한 사업장에서 수천 명이 한꺼번에 해고될 때 그 무지막지한 자본을 향해 호통쳐주는 어른 하나 없습디다.
노동자들이 핏발 선 눈으로 거리로 나설 때 역성들어주기는커녕 죄 우리만 나무랍디다.
그거 아세요. 당신은 조중동이랑 열심히 싸우셨습니다만 우리에겐 조중동이랑 한편처럼 보인 거.

 “야~ 기분좋다!” 시며 봉하로 가셨을 때 오리농법보다 더 중요한 일은 농민들의 삶의 실상을 들여다보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왜 목숨 걸고 한미 FTA를 반대했는지.
그리고 전용철, 홍덕표 그들의 죽음에 당신이 늦게나마 사과를 하면 참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랬다면 제가 봉하마을을 갔을까요. 아마 갔겠지요.
그리고.. 김 주익 얘기도 했을까요. 아마 그 얘긴 못했을 거예요.
말로 꺼내긴 크나큰 상처였으니까.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 말씀.
유난히 노동자들에겐 가혹하셨습니다.
2003년도 한진중공업에서 저는 한꺼번에 두 명의 지기이자 동지를 잃었습니다.
김 주익은 600여명 조합원의 명퇴에 맞서 2년을 싸웠고 노사가 합의를 했고
그 합의를 회사가 번복을 했고 그래서 크레인에 올라갔고 그 크레인 위에 129일을 매달려 있다가
아시다시피 목을 맸습니다.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런 시대는 정말 지났을까요.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들에게 종종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조각인 것을..

저는 당신을 부정한 게 아니라 당신을 넘어서고 싶었습니다.
착한 사람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지배가 없는 세상을 꿈꿨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시대에 그 꿈은 가장 허황되고 지리멸렬해졌습니다.
때론 우리가 품은 꿈이 너무 초라했고 궁색했습니다.
당신의 시대에 가장 많은 노동자가 짤렸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구속됐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비정규직이 됐고
그리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귀족으로 격상됐고 그들은 언론과 자본은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조차 적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이기주의를 꾸짖으십디다만 동료가 수백 명씩 짤리는 걸 목격한 노동자가 비정규직에게 내밀 손이 남아 있겠습니까.
저 살아남는데 써야지.

징역을 살 때 만난 사형수가 있었어요. 이 여잔 영치금이 한 푼도 없는 개털이었는데
새로 신입이 들어오면 아주 불쌍한 표정으로 샴푸나 속옷을 사달라는 거예요.
출소한 사람들이 쓰다만 물건들도 다 그 여자 차지였죠.
언제 죽을지 모를 사람이 사소한 물건에 집착하는 게 도덕의 눈으로 보자면 참 추접스럽습디다.
그 여자 집행되고 보니 샴푸나 속옷 나부랭이가 구석구석에서 쏟아져 나옵디다.
백분의 일도 못쓰고 죽었죠. 생에 대한 나름의 집착이었던 거죠.
샴푸 생길 때마다 빌었겠죠. 이거 다 쓰고 죽자.
정규직 노동자들은 삶의 벼랑에서 그런 심정으로 잔업하고 철야를 합니다.
얼마가 남았을지 모를 정규직의 삶을 그딴 식으로 저축하면서.
그 무렵쯤이었을 거예요.
변호사비용을 이제 그만 갚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당신의 시혜나 은전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 건.
적이 될 거라면 호적수이고 싶었습니다.
실력도 한참 모자라고 열정도 전만 못하고 진정성마저 잃어 그리 되진 못했습니다.
그게 참 부끄러워요.
똑똑한 사람들은 다 떠나 우리를 속속들이 아는 가장 무서운 적이 되었고 남은 자들은 동네북이 되어
초딩들마저 두들겨대고 천덕꾸러기가 되어 크레인엘 올라가고 굴뚝엘 기어 올라가도 언놈 하나 눈길주는 놈이 없어졌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고등학교 밖에 못나온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입 달린 사람은 죄다 침이 마릅디다만
고등학교도 못나온 저 같은 노동자들은 당신의 시대에 대부분 절감해야 할 원가가 되어
구조조정 당했고 효율화를 위해 비정규직이 됐습니다.
차라리 군사독재 시절엔 대드는 노동자만 짤렸으나 당신의 시대엔 남녀노소가 짤렸습니다.
서민의 벗이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나 부자와 빈자의 간극은 훨씬 더 까마득해졌습니다.
당신이 변호사에서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24년의 세월 동안 전 아직 복직도 못한 해고노동자로 찌질한 50대가 됐습니다.
생각해보니 짧은 시간 동지였고 오랜 세월 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뜨겁고 바른.
만고 씰데없는 소립디다만 그래서 대통령 같은 거 하지 말았으면 참 좋았겠단 생각
지금도 해요.

불안하고 불길한 기운으로 떠돌던 예감이 당신의 죽음으로 확연해집니다.
한 시대가 갔다는..

이제 상고출신이 변호사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양양한 가도가 보이고 그 길을 편하게 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의 있습니다!”
외칠 때, 그 외침에 뒤돌아보는 사람도 이제 더는 없을지도 몰라요.

만 명이 울어주면 천국에 간다했던가요.
천국에 가셨을 거라 믿어요. 진심으로.
김주익 곽재규 배달호 김동윤 최복남 이용석 이해남 이현중 정해진 하중근 박수일 허세욱..
당신의 시대에, 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서러움으로 억울함으로 목 놓아 울었던
죽음들입니다.

당신처럼 벼랑 끝에 내몰렸던..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죽음을 당신이 이해해주길 바란 적이 있었어요.
하도 야속해서. 노동자의 삶을 안다는 사람이 어찌 저럴 수가 있나 너무 미워서.
아무리 야속하고 미워도 그런 바람은 품지 말걸 그랬다 싶어요.
애증도 부질없어 졌습니다.

언젠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말들이, 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말들이 기형도의 시처럼
떠돌다 때때로 부딪히겠지요.
이제 변호사비용은 영원히 안 갚아도 되게 생겼습니다.
 
다음 생에 오실 땐, 너무 똑똑하게 오지 마시구려.
사법시험 같은 것도 합격하지 마시구요. 그냥 태생대로 기름밥 먹는 노동자로 만났으면 해요.
저는 당신에게 변절이라 손가락질 할 일 없이, 당신은 절더러 경직되었다거니 세상을
모른다거니 한심해 할 일 없이. 떠날 일도 보낼 일도 없이 그냥 내내 동지로.
그래서 언젠가 하셨던 말씀대로 자본가가 지는 해라면 노동자는 뜨는 해다.
그 멋진 말씀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순수한 열정, 남다른 정의감 그대로 만날 수 있길.
다시는 미워할 일도 상처 받을 일도 이렇게 미어질 일도 없이..


 

저작자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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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cyworld.com/happyacupuncturist BlogIcon dook 2009.06.05 14:2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너무 감동적인 글 감사드립니다. 저는 엘에이 삽니다. 평균적으로볼때 미주한인사회가 워낙 보수적이라 몇명 안되는 지인들이나 이런 글에서 조금씩 힘을 얻고 갑니다. 참 갈길이 멉니다...

  2. 구름 2009.06.05 17:4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프레시안을 통해서 글을 읽었습니다. 우리가 정말 아파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보고 분노하고 눈물을 흘려야하는지 너무나 명쾌하게 지적해주셨습니다. 노동자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꼈습니다.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멈출수가 없었습니다. 김진숙님, 건강하게 지내십시오. 그리고 고맙습니다.

  3. 자전거 2009.06.06 12:2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퍼 갈께요.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4. 루아 2009.06.09 23:4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진솔하게 가슴에 와서 울리는 글입니다. 잘읽고 갑니다.

2009.05.06 00:08

이것도 나라인가! - 김진숙지도위원 119주년 메이데이 부산역 연설문

이것도 나라인가.
아이들에게 시험 안치는 권리를 알려줬다고 선생을 수십명씩 파면시키는 이것도 나라인가.
결국 시험 치는 게 죽기보다 싫었던 여중생 네명을 한꺼번에 농약을 마시게 하는 이것도 나라인가.
강남아이들은 서울대를 가고 노동자부모를 둔 아이들은 청년백수가 되는 이것도 나라인가.
살인범의 누명을 쓴 아들의 원한을 풀기위해 이십년을 매달려 겨우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법안을 만들었는데 그 법안을 다시 되돌리겠다는 국회의원에게 항의했다고 칠십 노파를 구속시키는 이것도 나라인가.
인터넷에 글을 썼다고 무고한 사람을 구속시켜 만인에게 뽄때를 보여주는 이것도 나라인가.
아들과 애비가 구멍동서가 되어 어린 여배우를 죽음으로 몰고간 부자지간이 가장 강력한 언론인으로 행세하는 이것도 나라인가.
공정방송을 외치는 언론인을 쫒아내고 결혼을 사흘 앞둔 피디의 손목에 기어이 수갑을 채우고야 마는 이것도 나라인가.
대법원에서까지 복직판결이 난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복직을 6년이나 외면했던 동료의 복직을 위해 엄동설한에 굴뚝에 올라갈 수 밖에 없었던 노동자를 끝내 구속시키고 마는 이것도 나라인가.
살겠다고 망루에 올라간 철거민을 하룻만에 불태워 죽인 이것도 나라인가.
힘센 놈 앞에서는 설설 기다가 만만한 사람들 앞에서나 법을 외치고 원칙을 나불거리는 이들이 정치인으로 불리고 판검사로 불리고 언론으로 불리는 이것도 나라인가.
860만으로도 모자라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겠다는 이것도 나라인가.
 

저것도 대통령인가.
제 나라 국민들은 째려보다가 미국에 가서야 만면에 화색이 돌고 파안대소를 하는 저것도 대통령인가.
감세정책을 펴겠다더니 지 세금을 지가 깎는 저것도 대통령인가.
그렇게 깎아낸 세금을 메꾸기 위해 공기업을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외국자본에 팔아먹겠다는 저것도 대통령인가.
언론과 친밀하게 지내겠다더니 지 친구들을 몽땅 언론사 사장으로 앉히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언론과 친구를 먹는 저것도 대통령인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보며 한없이 자책했다더니 물대포와 곤봉과 구속으로 뒷통수를 치는 저 소갈머리에 모발이식을 한 저것도 대통령인가.




이것도 삶인가.
정규직은 비정규직이 되고 비정규직은 불안이 일상이 된 이것도 삶인가.살려고 올라갔던 망루에서 하루만에 불타죽은 시신이 되어 숯덩어리처럼 나뒹구는 이것도 삶인가.
지난겨울 죽은 시신을 100일이 넘도록 장례도 못 치르는 이것도 삶인가.애비를 잃은 아들이, 지아비를 잃은 지어미가, 시아버지를 잃은 며느리가 봄이 다가도록 상복을 벗지 못하는 이것도 삶인가.
갑자기 들이닥친 용역깡패들에 의해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렇게 교복을 잃어버렸던 열아홉살 아들이 끝내는 애비를 잃어야하는 이것도 삶인가.

철거현장에 연대투쟁하러 간다던 애비를 새벽에 깨웠던 그 아들이 내가 그날 안 깨웠으면 아버지는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자책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이것도 삶인가.
가난한 자들이 꾸는 꿈은 죄가 되는 세상에서 그들은 무슨 꿈을 꾸었던걸까요.
맛난 걸 먹다가도 식구들이 생각나 싸들고 들어오곤 했다던 칠십이 넘은 노인은 도대체 얼마나 허황한 꿈을 꾸었던걸까요.
평생 모은 재산으로 호프집 하나 차려 아들며느리와 함께 꾸려가며 새벽에는 장보고 온종일을 가게를 쓸고 닦는 낙으로 살았다던 그 사람좋게 생긴 노인네는 얼마나 헛된 욕심을 품었길래 불에 타죽고 그 아들은 다리가 부러진 채 애비를 죽인 살인범이 되었던걸까요.
칠십노인이 꿈꾸었던 나라는 단 하루도 살아보지 않은 새로운 세상은 아니었을 겁니다.
익숙한 일상의 지속. 그런 건 이제 세상에 없습니다.


기억처럼 무거운 것은 없습니다.
죽은 자와의 추억만큼 가혹한 것은 없습니다.
단 하나의 실수가 씻을 수 없는 죄가 되기도 하고 못다한 말 한마디가 평생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되돌릴 수 없을 때 세월은 잔인한 얼굴로 막다른 골목에서 우릴 빤히 쳐다보곤 합니다.

박창수 위원장이 살아있을 때. 그땐 사무실이 중앙동에 있었습니다.
늦은 밤 사무실을 나와 길을 건너서 막차를 기다리다 보니 맞은편에 작업복을 입은 박위원장이 취한 채 비틀거리며 사무실을 향해 가는 게 보였습니다.
나를 만나러 온 거라는 걸 알면서도 피곤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그냥 버스를 탔습니다.
무슨 얘긴지 내일 들어도 늦지 않을거라 생각했습니다.
취한 사람 얘길 길게 듣는 거보다 맑은 정신으로 짧게 듣는 게 현명한거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 얘기를 끝내 못듣고 그는 구속되었고 그리고... 죽었습니다.
129일을 크레인 위에 매달려 있던 김주익 지회장이 전화를 걸어온 날도 그랬습니다.
내려온 다음에 얘기해도 늦지 않을거라 생각했고 밧데리도 아껴야 되는데 싶어서 전화를 그냥 끊었습니다.
그 얘기도 끝내 들을 수 없었습니다.
삶이 전쟁인 자들에겐 내일이 없다는 걸 왜 그땐 몰랐을까요.
그 전쟁에서 오늘 전사할수도 있는 자들에겐 사랑한단 말도 힘내라는 말도 아끼면 한이 된다는 걸 그땐 왜 몰랐을까요.


세월의 어느 구비 단 하루도 노동자를 위한 정부는 없었습니다.
10년동안에도 누군가는 끌려갔고 비정규직은 끊임없이 늘어났고 노동자들은 죽었습니다.
세월의 어느 구비 단 하루도 노동자를 위한 정부는 없었습니다.
나와 별개라 믿었던 그런 세상이 촛불을 켜니 보였을 뿐이고 촛불을 따라가다보니 그런 세상과 맞딱뜨렸을 뿐입니다.
촛불은 그런 것들을 외면하지 말자는 약속이었습니다.
촛불은 그렇게 세상을 바르게 보고 넓게 보게 하는 지혜였습니다.
이명박을 선택한 게 우리들의 욕망이었음을 촛불은 일러줬고 그 욕망이어떻게 집행되는지를 보여준 게 용산참사였습니다.




여러분.
전국건설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저들을 한번 봐주십시오.
유난히 검은 저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 봐주십시오.
우리가 전기세를 내면 당연히 전기가 들어온다는 믿음을 위해 전봇대 위에서 청춘을 보낸 자들의 얼굴입니다.
스윗치 하나만 켜면 밤도 낮처럼 환해지는 대명천지를 위해 감전사고로 사지가 절단되고 전봇대에서 떨어져 하반신이 마비가 된 친구를 가진 서러운 사람들입니다.
담배피우다 세 번 적발되면 해고를 감수한다는 노예계약서를 쓴 저들의 하루 12시간의 노동에 의해 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21세기 문명을 생산해내는 저들이 일요일은 쉬고 싶다.담배 피웠다고 짜르는 건 부당하다. 18세기 요구조건을 내걸고 파업을 합니다.
전기를 쓰고 누리는 게 권리라면 저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건 인간에 대한 예의입니다.
아마 조만간 지하철노조가 파업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하철이 멈추거나 연착되는 잠시의 불편을 용인하지 못한다면 지하철은 역무실도 없고 역무원도 없고 기관사도 없이 운행하는 죽음의 롤러코스터가 될겁니다.
저들을 철밥통이라고 비난해온 결과 안정적인 일자리는 줄어들었고 세상은 훨씬 잔인해졌습니다.
촛불이 좌파의 역모라고 굳게 믿어서 그런지 어쩐지 이제 좌측통행도 없앤다는군요.
좌우지간이나 좌변기같은 말들도 없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쥐새끼가 시계를 볼줄 알아서 밤에만 설치겠습니까.
어두우니까 설치는 거지요.
촛불로 어둠을 몰아냅시다.
왠만한 빛에는 내성도 생기고 훔쳐서 물고 간 돈도 많은 쥐라 물대포도 쏘고 고춧가루도 뿌린다니까 촛불도 더 강해져야 합니다.

이제 다시 여름입니다. 촛불 들기 딱입니다.
노동자의 모가지를 짜르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자본이 그동안 배터지게 먹은 걸 토해내는 투쟁을 조직합시다.
명박아우~~~~~웃, 구조조정 분쇄, 비정규직 철폐, 청년 백수 청산을 위해 다시한번 힘차게 일어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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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llykim 2009.05.04 11:2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정말 한심한 젊은 이들이 많은 곳인가 합니다. 개인들이 자기 할일을 하지않고 국가를 걱정하면서 혁명을 일으켜 공산국가를 만들려고 하는 젊은이들이 정말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인가여 이싸치트는 완전 빨갱이 사이트인듯 공산당이 한국에도 있는듯 철없는 어린이를 이용하여 문재를 조작하는 빨갱이 싸이트인듯 젊은이들이여 조종자들의 앞자비 가 되지말고 머나면 한국을 바라볼수 있는 젊은이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없는 것도 만드는게 공산당 빨갱이 들의 방법을 젊은이들은 알아 차리길 노둥해방은 빨갱이들이 하는 언어....

  2. 니나잘해 2009.05.11 13:3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씰데없는 데 간섭말고 바로 위 당신 니나 잘 하쇼.
    남이야 노동해방을 말하던지 말던지... 빨갱인지 말런지 니나 잘하쇼.
    노동해방은 신성한 언어이외다.
    자신이 아는 것만 진실이라 믿으면 바보요.
    세상을 비판하고 스스로 비판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지식이라오.
    바보같은 allykim씨.

  3. Favicon of http://www.nikeairmax2012buy.com/ BlogIcon Nike Air Max 2012 2012.02.16 16:2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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