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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28건

  1. 2009.12.23 캄보디아 여행기②) 극복하기 힘든 캄보디아를 향한 연민 (6)
  2. 2009.11.27 캄보디아 여행기①) 눈물 한방울, 희망 한줌...캄보디아! (3)
  3. 2009.11.05 모든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부산노동자 등반대회를 다녀와서... (1)
  4. 2009.10.28 늙은 노동자들이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1)
  5. 2009.10.09 민중의 분노, 밤하늘에 솟아오른 거대한 불꽃 (2)
  6. 2009.09.28 '애자'를 보셨나요?
  7. 2009.09.28 1년 365일, 하루 24시간을 투쟁하는 일반노조!
  8. 2009.09.08 환자들 곁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2)
  9. 2009.08.31 예선 노동자들은 지금 투쟁의 바다를 항해중!
  10. 2009.07.17 사회적 합의 파기,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를 위한
2009.12.23 17:54

캄보디아 여행기②) 극복하기 힘든 캄보디아를 향한 연민


마지막 날 방문한 곳은 캄보디아 수도인 프놈펜 외곽에 위치한 도시빈민·철거민들의 마을이었다. 캄보디아 방문 내내 경악을 금할 수 없었지만, 갈수록 심각한 상황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우리는 얼랑깡안마을과 언동마을을 방문했는데, 뽀이뻿의 시골빈민촌에 비해 이곳은 상황이 더욱 처참했다. 배수시설이 제대로 없어서 무릎 높이까지 물이 마을 전체에 차있고, 나무로 대충 지은 집들은 거지촌이라는 느낌이 들만큼 남루했다. 마을 곳곳에 쓰레기가 물에 둥둥 떠다녔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집들이 즐비했다. 파리 모기 같은 해충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물에서 세수를 한다. 집안에 까지 무릎높이의 물이 들어찼다. 이 와중에 비좁은 공간의 집들이 다딱다딱 붙어있다. 이 상황을 어찌 글로 형용할 수 있을까. 글을 쓰면서 떠올려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아…….” “아…….”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다. 정말 울고 싶다. 온몸에 힘이 빠진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 도시빈민·철거민촌은 캄보디아 독재정권과 가진 자들에 의해 강제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원래 이 사람들은 프놈펜 도심에 살고 있었는데, 정부에서 관광객들 보기에 안 좋고 각종 개발 사업을 해야 한다며 이곳으로 강제이주를 추진했다. 당연히 이들은 철거에 반대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이들의 집들만 전부 타버리는 대규모 방화사건이 있었다. 누구의 짓일까! 모든 사람이 알고 있지만, 범인은 당연히 밝혀지지 않는다. 그 후 이들은 프놈펜 외곽으로 강제이주를 당하게 되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마을이 바로 우리가 방문한 얼랑깡안마을과 언동마을이었다. 가진 자들의 행태는 전 세계적으로 어찌 이리도 닮았을까. 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외국인들 보기에 안 좋다며, 대대적으로 철거된 서울의 달동네들. 거리 곳곳의 노점상들.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6명이나 화형당해버린 2009년 용산의 어느 빌딩 옥상. 부산 해운대 승당마을……. 도심의 높은 빌딩에 가려진, 우리네 버려진 삶이다.

캄보디아 연수 내내 우리는 대부분 천주교 신부님이나 수녀님이 운영하는 단체를 방문했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는데, 캄보디아 독재 정권이 종교단체가 아닌 약간이라도 정치적인 색채가 있는 NGO단체는 허용하지 않는 것도 있었고, 우리가 방문한 곳이 모두 충분히 검증된(?) 곳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검증이라…….?? 사실 좀 표현이 이상하긴하다. 처음 일정표를 봤을 때 죄다 종교단체 방문이라서 고개를 약간 갸웃둥했었다. 특히 나는 믿는 종교가 없었기 때문에 방문하는 곳을 너무 편향적으로 정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그런데 그곳의 종교인(?)들을 만나고 나서야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다. 그들은 특정 종교인이라기 보단 사회운동가에 가까웠다. 그들의 헌신적인 삶만을 보고 든 생각이 아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반티에이쁘리엡에서 첫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거기 신부님께서 내일 아침6시20분에 미사가 있다며, 우리 일행과 동행한 다른 신부님에게 참석하라고 했었다. 그 때까지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문득 궁금증이 들어서 물었다. “캄보디아는 불교국가 인데, 이곳에는 천주교 신자가 몇 명이나 되요?” 그랬더니 돌아오는 답변이 “한명도 없어요!”였다. 매일 아침에 미사를 하는데, 늘 신자 한명도 없이 신부님과 수사님들끼리만 한다는 것이다. 천주교 신부님들이 91년부터 반티에이쁘리엡에서 장애인재활사업을 했는데, 단 한명의 신자도 없다! 신기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그런데 신부님의 답변이 걸작이었다. “지금 우리가 학생들에게 미사에 참가하라고 한다면, 아마 거의 대부분 참가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우리의 권유는 뿌리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삶의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의 권유를 고사하겠습니까? 하지만 이는 평등하지 못한 것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전도랍시고, 미사 참가를 권하는 것은 옳지 못한 겁니다.” 반티에이쁘리엡 뿐만이 아니었다. 마지막 날 방문했던, 한국외방선교회가 운영하는 코미소직업학교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곳 신부님께서는 “과거 선교가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거나, 그 나라 민중들의 사상을 무시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선교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선교는 종교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정신을 전하는 것입니다. 즉 우린 종교의 정신인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라고 나직이 말했다. 충격이었다. 선교는 종교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정신을 전하는 것! 몇 번이고 되뇌었다. 과연, 검증(?)된 곳을 방문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물 부족 국가 2위. 통계조차 낼 수 없을 만큼 방치되어 있는 에이즈 환자들. 산업시설도 부족하고 일자리도 없는 절대 실업의 상태. 구정물에 세수를 하고 빗물을 식수로 이용해야만 하는 환경. 굶주림에 익숙해진 아이들……. 캄보디아는 UN이 지정한 세계 최빈국 중에 하나다. 이 최빈국에서도 최빈민층에 위치한 사람들의 삶은 직접 보고 느끼지 않고는 어떤 문장으로도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 그런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고, 어깨가 어스러지는 듯했다. 그런데 그들과 함께 살아가며 그들을 위한 사업을 오랫동안 묵묵히 진행하는 현지 활동가들은 대체 그 정신의 크기가 얼마 만큼일까! ‘나를 버리고 간’ 전태일의 정신을 정작 우리 노동운동가들은 망각하고 있는데……. 캄보디아에서 살아있는 전태일들을 보았다.

내가 무척이나 존경하는, 그래서 그를 만나러 연고지도 없는 충청북도까지 가게 만든, 어느 맑스주의자는 “연민이라는 감정은 사회구조의 변화를 위한 계급적인 인식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동의한다. 민중의 해방을 위해서는 ‘연민’이 아니라, ‘투쟁’이 필요하다. 장애해방은 장애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고, 장애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극복’은 자기 노력으로 얼마만큼의 달성이 가능하지만, ‘인정’은 전 사회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 연민으로 ‘극복’은 가능하지만, ‘인정’은 쉽지 않다. ‘인정’은 투쟁으로만 가능하다. 충북장애인권연대에서 일 할 때도, 지금 민주노총에서 노동운동을 하면서도, 나의 지배적인 사상이다. 그런데 약간의 수정이 필요해졌다. 수차례의 내전을 통해 숨죽이며 살기를 강요받았던 민중들에게, 당장 먹을 밥도 없는 민중들에게, 삶의 의지가 상실된 민중들에게, 오늘의 총궐기는 불가능하다. 지금 당장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연민’이었다. 아니, 실은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무기력함과 허무와 우울을 달래기 위해 필요한 건 ‘연민’이었다. 나름 깐깐했던 노동해방 사상을 잠시 접고, 내 마음이 달래질 때까지 연민을 느낀다.


캄보디아. 일주일의 연수기간 내내 마음 한구석을 우울하게 만든 나라. 이제 그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노력해보련다. 캄보디아가 내게 준,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힘을 남한의 노동자민중들을 위해 써보련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입만 살아서 중구난방인 참새떼에게 물어본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다리만 살아서 갈팡질팡인 책상다리에게 물어본다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져
난마처럼 어지러운 이 거리에서
나는 무엇이고
마침내 이르러야 할 길은 어디인가
갈 길 몰라 네거리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웬 사내가 인사를 한다
그의 옷차림과 말투와 손등에는 계급의 낙인이 찍혀 있었다
틀림없이 그는 노동자일 터이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어요 선생님은
그의 물음에 나는 건성으로 대답한다 마땅히 갈 곳이 없습니다
그러자 그는 집회에 가는 길이라며 함께 가자 한다
나는 그 집회가 어떤 집회냐고 묻지 않았다 그냥 따라갔다
집회장은 밤의 노천극장이었다
삼월의 끝인데도 눈보라가 쳤고
하얗게 야산을 뒤덮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추위를 이기는 뜨거운 가슴과 입김이 있었고
어둠을 밝히는 수만 개의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고
한입으로 터지는 아우성과 함께
일제히 치켜든 수천 수만 개의 주먹이 있었다
나는 알았다 그날 밤 눈보라 속에서
수천 수만의 팔과 다리 입술과 눈동자가
살아 숨쉬고 살아 꿈틀거리며 빛나는
존재의 거대한 율동 속에서 나는 알았다
사상의 거처는
한두 놈이 얼굴 빛내며 밝히는 상아탑의 서재가 아니라는 것을
한두 놈이 머리 자랑하며 먹물로 그리는 현학의 미로가 아니라는 것을
그곳은 노동의 대지이고 거리와 광장의 인파 속이고
지상의 별처럼 빛나는 반딧불의 풀밭이라는 것을
사상의 닻은 그 뿌리를 인민의 바다에 내려야 파도에 아니 흔들리고
사상의 나무는 그 가지를 노동의 팔에 감아야 힘차게 뻗어나간다는 것을
그리고 잡화상들이 판을 치는 자본의 시장에서
사상은 그 저울이 계급의 눈금을 가져야
적과 동지를 바르게 식별한다는 것을...
                                              <사상의 거처 / 김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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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7 11:19

캄보디아 여행기①) 눈물 한방울, 희망 한줌...캄보디아!

 

올해도 지역의 몇몇 활동가들이 민들레 기금으로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습니다.
민들레 기금이란 지역 ngo활동가들의 자기발전과 재충전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기금으로 2005년 1월 발족한 작은 기금입니다. 열악환 환경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역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지치지 않고 변화를 모색하고, 재충전과 시야를 넓여 부족한 점을 채워 다시 실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올해 참가자 중 민주노총 부산본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승호동지의 생생한 캄보디아 여행기를 두 차례에 걸쳐 싣고자 합니다.
캄보디아 여행을 다녀온 후 캄보디아의 예쁜 딸이 생겼다는 그,  캄보디아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왔는지 함께
나누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캄보디아.

일주일의 연수기간 내내 마음 한구석을 우울하게 만든 나라.

다녀온 지 한 달이 지나 연수 감상문을 적는 이 순간까지 처음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여전히 ‘우울’이다. 빈민촌의 아이들과 어우러질 때는 그렇게도 즐겁다가 이동을 위해 승합차에 오르면 가슴이 뻥 뚫린 듯 멍해지는……. 캄보디아에서의 일주일은 조울증에 걸린 사람마냥 즐거움과 우울의 반복이었다. 그래서인지 돌아와서 사람들이 “재미있는 여행이었냐”고 물을 때마다, “음……. 굉장히 충격적이고, 비참했다. 그래서 참 좋고 즐거운 여행이었다”고 답했다. 우울의 기억을 더듬기가 싫었나보다. 그래서 다이어리에 ‘연수보고서 쓰기’라고 한 달 전부터 적어놓고는 하루하루 미루기만 했다. 사실 지금도 피하고 싶다. 그러나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의 무게를 온통 짊어지고 살아가는, 그러기에는 너무나 작고 어린, 캄보디아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느끼려고 노력하며, 그들과 함께한 기억을 더듬어본다.

많은 세상 사람들은 캄보디아하면 화려하고 웅장한 앙코르와트를 떠올리지만, 내게는 그것조차도 ‘우울’의 연속이었다. 앙코르와트라는 거대한 사원을 건설하기 위해 수천수만의 노예들과 인민들이 고된 노동에 시달리며 피와 땀을 흘리며 죽어갔을 것이다. 거대한 제국은 영광스러운 역사가 아니라, 수치스러운 역사다. 그 거대한 규모만큼의 약탈, 강간, 살인이 병행되었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있어 한반도의 역사 중 가장 치욕스러운 역사는 바로 고구려의 역사다. 오늘날 남한 사회에서 국가주의자들의 가장 큰 오류가 바로 ‘제국’이 가지는 이러한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과거의 앙코르와트가 약탈, 강간, 살인, 착취의 산물이라면, 현재의 앙코르와트는 ‘오빠 이것 예뻐요. 1달러, 1달러!’를 끊임없이 소리치는, 남한에서 태어났다면 아마도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음직한, 아이들의 비극적인 생존 현장이다. 그마저도 상당수는 누군가의 강요에 의한 앵벌이 노동이라고 하니, 앙코르와트 아이들의 눈을 쳐다보기가 어렵다. 캄보디아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역사라는, 동남아시아 일대를 전부 다스렸다는, 그 제국의 상징물인 앙코르와트는 그런 의미에서 ‘우울’의 연속이다.

<화려하고 웅장한 앙코르왓트, 이 거대한 제국은 영광스런 역사가 아닌 고된 노동과 착취의 역사였음이리라..>

 

<"1달러,1달러"를 끊임없이 외치는 아이들, 앙코르와트 아이들의 눈을 쳐다보기가 어렵다>


캄보디아 연수에서 1일차에 앙코르와트를 방문한 것을 빼고는 관광(?)은 없었다. 물론 그 조차도 언급한 것처럼 절망적이고 우울한 감정과 함께해야 했지만……. 2일차부터 본격적인 연수가 시작됐다. 연수의 방식은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NGO나 종교단체에 방문해서 그 지역의 상황과 활동내용 등을 듣고, 직접 현장을 순회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10곳 남짓이었는데, 대체로 그 지역에서 가장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돕는 곳이었다. 우리는 뽀이뻿이라는 태국과의 국경지대에 있는 농촌을 둘러보기도 했고, 반디쁘리엡이라는 장애인재활센터도 방문하고, 도시빈민·철거민들이 강제 이주를 당한 얼롱깡안마을을 가기도 했다. 각각의 사연은 조금씩 달랐지만, 그들의 처참한 삶은 같았다.

 
뽀이뻿에서는 ‘뽀이뻿프로젝트’라는 것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주로 2가지의 사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너무 가난해서 취학연령임에도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학교 보내주기 사업’이고, 다른 하나는 돈이 없어 방치되어 있는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치료 및 영양보급사업이었다. 이 사업의 진행방식에서 눈에 띄는 것은 당사자들에게 직접 돈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령, 학교 보내주기 사업에 선정된 아이가 있으면, 부모들이 아이를 학교에 다니게 하면, 그 가정으로 한 달 단위로 먹을거리와 생필품을 지급한다. 에이즈 환자 영양보급도 마찬가지로, 마을 보건소로 직접 찾아오거나 활동가들이 각 가정으로 방문해서, 환자들이 영양식품인 ‘두유’를 먹는 것을 확인해야만 한다. 이는 돈만 받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거나, 두유를 배고픈 다른 가족들에게 먹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가난의 극치에 이른 사람들에게 학교와 두유는 사치품일 수도 있는 현실이다. 남한의 아이들이 너무나 쉽게 누리는 것들이 뽀이뻿의 아이들에게는 애타게 갈망하는 것이 된다.

 

이 사업으로 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는 약 80명이라고 한다. 이들을 위한 비용은 모두 외국인들의 성금이란다. 부산에 있는 아시아평화인권연대라는 단체를 통해 한국인들이 약 40명의 아이들을 후원하고 있고, 스페인 사람들이 나머지 약 40명을 후원하고 있다고 한다. 캄보디아 정부는 가난한 민중들을 위한 정책에서 손을 놓고 있단다. 97년 쿠데타로 집권한 훈센 정부는 현재까지 10년을 넘게 독재정치를 하면서 온갖 비리와 착취로 일관하고 있었다. 남루한 집에서 제대로 끼니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뽀이뻿에만 수천 명이나 되는 에이즈 환자들을 위해, 캄보디아 정부가 하는 일은 ‘nothing’이다. 이렇게 방치된 민중들에게 NGO나 종교단체들은 그들의 정부보다 더욱 믿음직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남한의 민중들에게 있어 나는 혹은 내가 몸담고 있는 민주노총은 얼마나 믿음직한 존재일까!’ 캄보디아에서 헌신적으로 일하는 활동가들을 보며 혼자 조용히 되뇌어 본다.

 

<가난하고 병든 민중들을 위해 캄보디아 정부가 하는일은 'nothing'이다>


구정물에서 뒹굴고 있는 굶주리고 헐벗은 아이들을 보면 누구나 가장 먼저 ‘연민’의 감정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표정은 의외로 밝았다. 빈민촌에 방문할 때마다 그들의 비극적인 생존 현장에 놀랐고, 너무나 밝은 그들의 표정에 또 한 번 놀랐었다. 환경에 적응한 것일까? 아니면 행복 추구의 꿈을 포기한 것일까? 둘 다 사실일지도 모르겠으나, 아마도 그것보다는 우리의 시선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입장에서 ‘이러이러한 삶이 행복한 것이다’라고 규정지어 놓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 내 친구들이, 나의 가족들이, 민주노총이라는 빨갱이집단(?)에서 일하는 나를 보며, ‘넌 참 위험하고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규정하는 것처럼. 어쨌든 빈민촌의 아이들과 어울릴 때 참 즐거웠다. 사소한 것에도 너무 환하게 웃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들의 동심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자 해맑은 얼굴로 신기해 하는 아이들, 사랑스런 그들의 동심을 지켜주고 싶다...>


뽀이뻿 다음으로 돈보스코학교, 시스폰 성당, 바탐방 성당, 따헨 성당, 원불교무료병원을 방문했다. 각각 조금씩 방식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체로 그 지역의 최빈민층들을 위한 교육, 의료, 복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캄보디아 연수 5일차에 우리가 방문한 곳은 반티에이쁘리엡라는 장애인재활센터다. 캄보디아는 오랫동안 내전을 겪은 나라다. 그 과정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처형을 당하거나, 지뢰사고로 신체장애를 입게 되었다. 반티에이쁘리엡은 내전 당시 크메르루즈군의 살육현장이기도 했으며, 통신군부대, 감옥, 공장 등으로 활용되었다가, 1991년에 장애인재활센터로 바꿨다고 한다. 갈등과 상처의 상징이었던 곳이 치유의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반티에이쁘리엡에서는 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조각, 전기전자, 기계, 농업, 재봉 등 다양한 기술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다. 91년부터 현재까지 졸업자가 총 1,500여명에 이르고 있단다. 경제적 빈곤과 함께 열악한 사회인식에서 비롯된 편견의 테두리에 갇혀 이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장애인들에게 반티에이쁘리엡은 새로운 희망을 선물해오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외부의 원조나 도움 속에 묻힐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것. 밥을 먹여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밥 먹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 이것이 반티에이쁘리엡의 선물이었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것, 그것이 반티에이쁘리엡의 선물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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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5 09:35

모든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부산노동자 등반대회를 다녀와서...


진보신당 남수영 당협 이강원

 

햇살에 얼굴이 간지러운 아침이다. 차창을 타고 넘어 오는 바람이 눈부시다.
오랫동안 칩거에 가까운 귀차니즘은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했다. 그 간단한 교통편 하나 제대로 판단을 못해 한참을 주춤됐다. 조금은 늦은 시간 이였는데. 겨우 대천공원 입구에 도착한다. “이런 아무도 보이질 않는다“
일행은 벌써 출발을 했단다. 산행길이야 손을 보듯 뻔하지만 따라 잡으려 서둘러 산행을 시작했다. 일전에 왔을 땐 등산로 입구까지의 길은 편평한 흙길 이였는데 걷기도 민망한 시멘트 바닥이다. 항상 기대감이 없이 등산을 하지만 예전 보다 더 실망스러운 등산로에 시작부터 기분이 꽝이다. 돈 쓸데가 그렇게 없나, 이런데다가 갖다 버리게..... 하여튼 구청 공무원이란 것들 생각 이라는 게.... 차라리 독거노인이나 결손가정에 생활지원이나 하지... 뭐 이런 저런 투덜감을 내 뱉으며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선다.

조금씩 더 서둘러야 한다. 한 이십여 분이면 일행들의 후미를 잡을 것이다.
평소 보다 빠른 페이스에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조금씩 가빠온다. 여전히 오르막 언덕은 계속되고 예상했던 시간이 지나도 일행들의 뒤꿈치는 보이지 않는다. 급히 오느라 아침도 거르고 왔는데 이러다가 늦어서 점심도 못 얻어먹을 것 같다. 자꾸 허기가 진다. 그래서 인지 평소 보다 못한 발걸음에 지쳐간다.
아 이런 ~ 극심한 낭패감이 몰려온다. 아직도 오르막이 계속 되는지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노란 깃발에 무어라고 적혀있는 배낭이 보인다. 그렇다 맞다!
모든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기본법을!!!
정말 이렇게 반가울 수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서둘러 걸음에 힘을 주었다.
김밥 한 줄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일행의 후미를 쫒았다.
그런데 한 순간의 안도감은 실망으로 바뀌었다. 겨우 만난 그들은 이미 일행들에게서 낙오한 몇 명일뿐 하지만 그들의 모습이 낯이 익다. 공공노조에서 상근하는 지인이다. 퍼질러 앉아서 너무나 우아하게 계란을 까서 먹고 있다.
물어 보지도 않고 잽싸게 계란을 까서 먹는다. 또 까서 먹는다. 물 한 모금 마신다. 이제 조금 살 것 같다.
그렇다!! 난 방금까지 이 깃발만이 지금의 허기와 고통에서 나를 구해 줄 유일한 희망 이였다. 함께하는 대오의 깃발 속에서 이탈되고 고립된 개인은 힘을 낼 수가 있고, 함께하는 개개인을 만나면서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새삼 공공에서 일 하시는 분의 모습이 무척이나 살가워 웃음이 나온다.

아직 본 일행은 한 참을 가야 한단다. 아마 정상까지 도착했을 것 같단다. 그냥 억새밭까지 가서 기다리란다.
허 이런~ . 어차피 늦었지만 가는데 까지 가 보자... 빠른 걸음은 계속된다. 신기하게도 쉬 지치지 않는다. 계란 몇 알이 주는 에너지가 대단하다. 억새밭은 행사를 위해서 분주한 스텝들이 보인다. 무심히 그들을 뒤로 하고 정상을 향해 내 달린다. 이제부터는 정상까지 나무 우거진 숲길이다. 부지런히 오르고 오른다. 숨도 이제 턱 밑으로 올라온다.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이 눈에 들어가 따갑다. 소매 깃으로 연신 훔쳐내며 걸음을 재촉한다. 가파르게 올라선 마지막 산길은 정상 밑 산불 진압용으로 낸 길과 만난다. 마침내 정상이다. 산 정상에선 산신제를 지낸다고 인파가 장난이 아니다.
여기 저기 노란 깃발을 꽂은 배낭들이 눈에 띈다.

모든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기본법을!!!

인파 속에 함께 묻혀서 그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간혹 무슨 내용인지 유심히 쳐다보는 사람들도 보인다. 나도 몇 차례 사람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은근슬쩍 배낭의 깃발을 손에 들고 흔든다. 조금은 더 시선이 집중된다. 온 몸이 바람에 휘감긴다. 싸늘한 한기에 땀이 다 씻겨 나간다. 시원하다. 이 느낌...

서둘러 내려온 억새밭에선 점심이 한창이다. 나도 일행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도시락을 먹는다. 정말 행복한 점심이다. 말도 안 돼는 이유로 쫒겨난 센텀병원 간병인 누이들의 도시락에는 즐거움이 쌓여있다. 편한 잠 한번 잠시 못 자고 작업 하면서도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 해온 예인선 사내들의 거친 막걸리 잔에는 자신감과 승리감이 담겨있다. 모두들 제 세상이다. 즐거운 여흥이다. 모두 함께 하는 근로기준법 퀴즈에는 단일한 대오에 대한 서로에 대한 배려를 외친다. 잊지 못 할 충만감이다. 같이 외친다.

모든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기본법을!!!

발 끝 멀리까지 펼쳐진 세상의 가을은 눈이 시리게 푸르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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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8 14:32

늙은 노동자들이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김영진
민주노총 부산본부 본부장

늙은 노동자들이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거친 파도와 싸우며 평생을 살아온 분들이 노동자임을 자각하고 민주노조 깃발을 세우기 위해 80일 넘게 파업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예선 노조 조합원들입니다.
지난여름부터 한 치의 흐트림 없이 부당한 해고에 맞서 투쟁하며 지역의 연대 투쟁에 항상 함께하는 간병인 여성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이 늙은 노동자들이 왜 이제 노동조합을 만들어 이렇게 힘든 투쟁을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동지들의 얼굴을 보면서 답을 찾습니다.
티 없이 맑은 아이들처럼 믿음을 가지고 희망을 찾아가는 순수한 열정이 그들을 지켜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역과 직종을 불문하고 많은 사업장이 정권과 자본의 압박으로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6년전 아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한진 중공업에서도 사측과 장기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사측의 욕심이 6년 전과 같아서 더욱 공세적 투쟁이 필요합니다.
부산시가 외자 유치를 한 성과라고 자랑했던 정관의 SPX자본은 민주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 조합원을 해고시켰습니다.
노동자들이 지노위에서 승소를 했지만 사측은 복직 시킬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합니다.
일반노조의 보람상조, 유창 환경, 삼화여객, 신아 환경, 광안 환경 등의 사업장에서 힘들지만 흔들리지 않고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전태일 열사 39주년이 다가오고 있지만 아직도 자본과 정권의 압박으로 지역과 직종을 불문하고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다시 한 번 점검이 필요합니다.
10월, 11월이면 더욱 더 열사들이 생각납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모든 것이 잊혀 진다지만 우리 노동자들에겐 잊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시대의 변화가 많은 것을 바뀌게 한다지만 우리 노동자들에겐 변하지 않고 꼭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열사들이 우리 노동자들에게 남긴 정신을 어찌 잊을수 있겠습니까?
열사 앞에서 맹세한 우리의 투쟁 결의가 변할 순 없습니다.
가슴에 담아 두는 것만으로 열사 정신을 계승한다고 할 순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 한 것은 바로 행동입니다.

투쟁의 실천이 없다면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돌파 할 수 있겠습니까?
하반기 정권의 공세는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민주노조를 말살하려 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을 정 조준하여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멈추지 않는 투쟁이 필요합니다.
노동자 서민의 거센 저항을 시작합시다.
그러기 위한 하나 하나의 실천이 중요합니다.
한 동지 한 동지가 모두 전태일이 됩시다.
총 단결, 총 투쟁의 깃발을 다시 한 번 치켜 올립시다.
지나간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투쟁의 성과도 우리에겐 중요한 자산이지만 거기에서 머물고만 있다면 우리에겐 내일의 희망이 보이질 않습니다.
투쟁의 상징이었던 골리앗이 노사정 화합이라는 미명아래 정권과 자본의 홍보물로 전락되고 그 투쟁은 이미 과거의 이야기가 되고 있습니다.
현재의 실천 투쟁만이 내일의 희망을 담보할 수 있고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지 않습니다.
이 정권의 머리와 가슴 속에는 시작부터 노동자 서민은 없었습니다.
저들에게 있다면 가진 자들의 정권 연장과 그 들만의 삶만 있을 따름입니다.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가지 않는다면 결코 가질 수 없습니다.

동지들! 멈추지 않는 투쟁을 전개합시다.
지금 부산지역본부에서는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바라보는 사업이 아니라 모두가 참여하는 사업으로 만들어갑시다.
11월 8일 서울에서 전국의 노동자 10만이 모입니다.
매년 하는 의례적인 행사가 아니라 지역에서 결의하여 모이는 10만이 필요합니다.
우리 10만의 전태일이 만나는 노동자 대회를 성사 시킵시다.
그 선봉에 부산의 4천 전태일이 함께 합시다.
열사가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은, 잊지 않고 가슴 속에 남아 있다는 것은, 우리의 투쟁이 멈추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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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nikenfljerseysonline.net/ BlogIcon Nike NFL Jerseys 2012.09.10 16:5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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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9 21:05

민중의 분노, 밤하늘에 솟아오른 거대한 불꽃

류장현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10월 16일 밤 8시, 남포동 부영극장앞.

부산에서 가장 번화한 도심에서 경찰차를 태우며 하늘로 치솟는 거대한 불꽃. 수만명 군중이 ‘독재타도, 유신철폐, 언론자유’를 목이 터져라 외치는 함성이 내눈앞에 펼쳐졌다. 길가의 모든 파출소는 보이는 족족 박살났다. 세무서, 동사무소, 언론사, 민주공화당 사무실에는 분노한 군중들의 돌팔매가 퍼부어졌다. 이날 아침 10시, 부산대학교 수십명의 학생들이 시작한 ‘데모‘는 수천 학생들의 봉기가 되어 시내로 물밀 듯이 쏟아졌다. 하루도 지나지 않은 그날밤, 시내 한폭판에서 수만명의 군중들이 분노를 쏟아내는 거대한 민중항쟁으로 타올랐다.

<1979년 부마민중항쟁 당시> 거리로 나온 학생들과 박수치는 시민들

그 열하루 뒤인 1979년 10월 27일, 18년 동안이나 혼자 대통령을 해먹던 박정희가 심복이었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지금의 국가정보원 원장)가 쏜 총에 맞아 죽었다는 라디오 뉴스를 들었다.


1961년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고 1979년까지 대통령을 지낸 박정희는 ‘수출지상주의’를 내걸었다.
물건을 만들어서 외국에 팔려면, 기술력이 없었던 당시로는 값싼 물건이 만들어져야 했다. 당연히 저임금이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에 쌀과 곡물류는 저가격을 유지했다. 삼성 등 재벌들은 값싼 외국산 밀가루를 수입하여 떼돈을 벌었으나 농민들은 망해갔다. 벌어먹고 살기위해 농민들과 자녀들은 도시로 도시로 밀려들었다.

마산에는 박정희 정권의 비호아래 외국기업이 한국의 노동자들을 값싸게 부려먹는 ‘수출자유지역’이 만들어졌다. 부산에는 국제상사, 화승그룹 등 수만명을 고용하는 신발공장, 합판공장등 수출용 공장들이 이루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에게는 절망이었다. 하루 12시간 이상의 중노동에 시달렸으나, 근로기준법이 있는 지도 몰랐다. 노동조합은 법상으로 어용노총인 ‘한국노총’만 허용되었다.

1970년 11월, 서울 평화시장 재단사였던 전태일 열사가 환풍도 안되고 허리도 굽혀지지않는 다락방 공장에서 15시간씩 고되게 일하던 봉제여성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개선시키기 위해 투쟁하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고 외치며 분신자결하였다.

1979년 8월 9일, 가발 수출업체인 YH무역의 여성노동자 200명은 회사폐업에 맞서 회사정상화를 요구하며 당시 야당이었던 ‘신민당’사에 들어가 농성을 벌였다. 박정희정권은 그들이 ‘산업전사, 수출역꾼’으로 부르며 칭송했던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농성 4일째 8월 11일 새벽2시, 1,000여명의 무장경찰을 최루탄을 쏘며 신민당사로 진입시켰다. 이과정에서 22살의 김경숙 여성노동자가 건물에서 떨어져 살해당했다.
당시 야당 당수있던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10월 4일, 다수당인 공화당의 표결처리로 국회의원에서 제명당했다.
1979년,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장시간노동뿐아니라 상급자들에게는 노예처럼 취급받았다. 더구나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2차 석유파동으로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


1980년대 광주민중항쟁 당시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선배, 친구와 함께 박현채 교수의 ‘민족경제론’등을 읽고토론했다. 전태일열사 이야기를 들으면 노동자의 고통을 전해들었다. YH무역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외침이 무장경찰에 의해 도륙당하는 모습을 목격하였다. 박정희 정권에 대항하던 야당 당수의 국회의원 제명도 목격했다.
‘독재타도’는 생존의 길을 찾는 민중의 외침이었다.
‘유신철폐’는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간선제로 뽑고, 데모도 못하게 하는 권력에 대한 처절한 분노였다. ‘언론자유’는 노예처럼 부림을 당하는 민초들의 외침을 광야에 퍼지게 하자는 자유의 외침이었다.
젊은 청년들의 외침이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남포동에서 수만군중의 함성과 불길로 솟아오를 때, 잠시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나 최루탄과 페퍼포그를 쏘며 경찰에 맞서 돌팔매와 빈병을 집어던지며 거대한 저항으로 타오르자 ‘희망을 만드는 힘이 가까이 있구나’ 하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30년이 지난 지금,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생존의 위한 처절한 투쟁, 군중의 촛불과 권력의 탄압, 임금이 깍이고 길거리로 쫒겨나는 노동자들. 일자리가 없어 청춘을 그냥 삭혀야 우리의 아이들.
여전히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한가운데 있는 내가 거대한 민중의 불길을 다시 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작년 여름 광장을 뒤덮었던 촛불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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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화수 2009.10.14 14:4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 Favicon of http://www.nikenfljerseysonline.net/ BlogIcon Nike NFL Jerseys 2012.09.10 16:5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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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8 14:14

'애자'를 보셨나요?


조남호 회장님!
공사다망하신 분이라 별 기대없이 하는 질문이긴 합니다만, 혹시 ‘애자’라는 영화를 보셨는지요?
만약 그 영화를 보셨다면 같은 하늘아래 같은 세대를 사는 ‘우리’가 유일하게 같이 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애자라는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더군요.
어린 시절 장면을 보니 저랑 좀 비슷하기도 해서 뜨끔한 장면도 있긴 했습니다만 근본적으로는 다릅디다.
고분고분하진 않은 한마디로 부모 애깨나 좀 먹이던데, 급기야 홀어머니가 딸내미 담임 선생님께 불려 갑니다.

“우리 아가 문제가 좀 있십니까?”
“딴 걸 다 떠나서 야가 비오는 날은 학교를 안 옵니다”
“니 학교 간다카고 나가서 어데로 갔노?”
“바다”
“뭐어? 바다? 바다는 말라꼬 가는데?”
“시 쓸라꼬”


비 오는 날 학교를 안가는 건 저랑 비슷하고 시 쓰러 바다를 가는 건 달랐습니다.
저는 우산이 없어서 학교를 못 갔거든요.
우산이 없어서 학교를 못 갔다. 혹시 이런 말이 이해가 되시나요?
가난한 시골의 그것도 형제 많은 집에서(참고로 저희 집은 5형제 였습니다만) 비가 온다든지, 한날 한시에 소풍을 간다든지, 같은 날 미술시간이 들었다든지, 체육시간이 겹친다든지 어쨌든 그런 저주 받은 날의 등굣길의 풍경을 상상이나 하실 수 있을런지요?(방금 인터넷을 찾아보니 다행히도! 회장님 댁도 5형제시군요!)
다른 날은 꾸물럭대던 언니들이나 동생이 그런 날은 어찌나 잽싼지 살 부러진 우산이나마 장검처럼 꿰차고 나가버리면 참 막막하지요.
부모님들도 이미 나가고 안 계시니 어디다 하소연할 데도 없고, 30년도 훨씬 더 지난 일입니다만 쓰다보니 그 막막함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어쨌든 때때로 막막한 아침을 맞아야 했던 아이들은 자라서 대부분 회장님의 종업원이 되었을테고 그 막막함을 한 자락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은 같은 5형제라도 전혀 다른 세상을 살며 그들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애자’에서 제가 유난히 꽂힌 장면이 있었습니다.
엄마가 병들어 시한부의 삶을 살게 되자 딸내미가 엄마가 운영하던 동물병원을 정리하게 됩니다.
처분할 건 처분하고 실어 낼 짐들도 대충 실어내고 나자 그 병원에 서너 마리의 개가 남겨집니다.
그 병원에서 일했던 이에게 이달치 월급과 퇴직금까지 지급한 후 애자가 묻습니다.

“언니야, 이럴 경우 야들은 우째야 되노?”
“그냥 다들.. 안락사 시킨다”

애자는 냉장고에서 약품을 꺼내 주사기에 재고는 그 강아지들을 끌어안고 한참을 웁니다.
하물며..개한테도 그럽디다.
말을 할 줄 모르니 애원을 한 적도 없는 개한테도 그럽디다.
생산성에 기여를 한 적도 없고 자본을 축적하는데 어떠한 잉여가치도 창출한 적이 없는 개한테도 그럽디다.


쌍용차 사장님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함께살자’던 노동자들을 끝내 내치는 과정에서 여섯명이나 목숨을 잃게 만들었던 쌍용차 사장님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노동시간을 줄이고 임금이나 복지를 줄여서라도 정리해고만은 막겠다던 노동자들 2646명의 생존을 기어이 빼앗았던 쌍용차 사장님은 무슨 마음이었을까요?
그들의 절규와 울부짖음을 헬기소리와 오, 필승 코리아로 무찔러 버렸던 그 사장님은 이겨서 아주 기쁘셨을까요?

 

아시다시피 한진중공업의 임단협이 아직 끝나질 못했습니다.
여름휴가를 넘기지 않는 게 관행이었습니다만 올핸 추석을 넘길 조짐마저 보입니다.
노조간부들은 석 달 째 철야농성중입니다.
부당한 일을 당하면 모여서 고함이라도 지르고 머리를 맞댈 수라도 있는 그들은 차라리 행복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작년 연말 상여금이 아직도 꿩 구어먹은 소식이고 하루가 멀다하고 일자리가 사라지는 하청노동자들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딛는 심정일 겁니다.


2003년. 아직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아니, 기억하신다면 이러실 리가 없을텐데 말입니다.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두 사람이나.. 죽었습니다.
한진중공업에서 청춘을 바친 늙은 노동자들을 굳이 600명이나 자르겠다는 회장님의 방침만 아니었어도, 그들은 지금쯤 부모님의 묘소에 벌초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을 겁니다.
그들을 복직시키겠다는 약속을 회장님께서 지키기만 했어도 그들은 노동조합의 임기를 마치고 오늘 같은 일요일은 개콘을 보겠다는 아이들과 리모컨 쟁탈전이나 벌이며 하냥저냥 나이들어 가고 있겠지요.
600명을 짤라내지 않으면 회사가 곧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습니만 결국 두 사람의 목숨값으로 20년 전에 짤린 노동자들까지 (저만 제외하고!) 복직을 했습니다만 회사는 안 망했습니다.
30억을 들여 식당이 지어지고 복지회관이 지어지고 일방중재조항들이 폐지되고 삼십여년을 가로막아 왔던 불통의 장벽이 그렇게 하나하나 허물어져가고 상식이 들어서는 듯 보였습니다.
불안한 평화는 그렇게 5년이 시한부였습니다.



회장님!
한번 자유의 맛을 본 사람은 다시 노예로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이건 제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어떤 유명한 사람이 한말인데 누군지 기억나진 않는군요.
5년 전. 두 사람이나 목숨을 바쳤던 건 그런 이유였습니다.
해고되고 구속되고 그렇게 싸워가며 우리는 고통만 맛보는 건 아닙니다.
인간이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몸으로 깨치고 그렇게 깨친 자유와 정의에 대한 의지는 목숨보다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그걸 지킬 수 있을 때라야 우리가 인간일 수 있는 까닭입니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77일을 한결같이 외쳤던 것도 그 말일 것이고 그 명쾌한 목소리들이 우리에겐 들리는데 그 말을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들이 그들의 지배자였다는 게 이 시대 노동자들의 비극입니다.
저는 회장님께서 우산이 없어 학교를 못 가는 건 이해를 못하시더라도 이 말만큼은 부디 이해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한진중공업에서 임단협이 길어진다는 건 단순히 날짜의 지루함만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불길한 전조. 혹은 전운..


포항에 진방스틸이라는 공장에서 부당해고에 맞서 1년을 넘게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그 회사를 부산주철관이 인수를 하면서 이 노동자들이 한 번씩 부산으로 투쟁을 하러 오는데 그런 날은 우리 사무실에서 묵어가곤 합니다.
씻을 데도 마땅찮고 누울 데도 마땅찮은 공간에 모기는 들끓으니 얼마나 고역이겠습니까.
며칠 전에도 이들이 다녀갔는데 예순다섯명이나 되는 사내들이 수도꼭지 두 개 달린 남자 탈의실에서 씻을라면 밤을 새워도 못 씻을테니 여자탈의실까지 침범을 했다가 변태로 몰릴까 급했는지 증거를 미처 인멸을 못하고 흘리고 갔습디다.
시커먼, 그것도 한겨울에 신는 군용담요 같은, 그것도 뒷꿈치가 뻥 뚫린 양말.
첨엔 신경질이 나서 씨불씨불 하다가 갑자기 좀 쓸쓸해지더군요.
여자탈의실에 뒹구는 뒷꿈치가 뚫어진 남자 양말처럼.
그들은 그 두꺼운 양말이 뚫어질 때까지 얼마나 헤매고 다녔을까요.
그 양말마저 잃어버리고 맨발인 채로 그들은 또 어디로 갔을까요.
몇 달을 집에 못들어 간 한진중공업 노조간부들도 이 밤 탈의실 구석에서 고랑내 나거나 뚫어진 양말을 그 성긴 손으로 주물주물 빨고 앉아 있겠지요.
뚫어진 양말을 신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양말이 뚫어지도록 일하는 사람들을 종종 적으로 내몰곤 합니다.
그럼 그들은 적이 될 수 밖엔 없을 겝니다.
회장님께서는 선친으로부터 돈과 명예와 권력뿐만이 아니라 그런 유전자까지 물려 받으셨을테니까요.
김 진숙이라는 인간을 직접 본 적도 없으면서 뿔 달린 빨간 괴물로 인수인계 받으셔서 한진중공업에는 범접할 수 없는 혐오동물로 낙인을 찍으셨듯이.


애자’ 마지막 장면에 보니 그 강아지들이 결국 살았습디다.
저는 가슴을 쓸어 내렸습니다.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고 애자 혼자 쓸쓸히 집에 돌아오는 장면이었는데 전 그 장면이 참 따뜻했습니다. 
회장님!
곧 추석입니다.
저는 오늘 외포리 큰언니한테 못 간다고 전화를 하고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다 돌아가셔서 큰언니 큰형부가 저한텐 부모님이고 그분들이 고향에 계셔서 명절 때면 가곤 했습니다.
남동생이 몇 년전 객사를 하고, 비오는 날이면 그 많던 형제들 중 부모님 차례를 모실 형제가 저 밖엔 없어 제가 가야 그나마 부모님 차례라도 지냅니다.
한진노조 간부들, 그리고 일자리를 잃은 한진 하청노동자들, 그들 중에도 고향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겠지요.
제가 그렇다고 철야농성을 함께 하는 것도 아니고 짜달시리 뭐 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냥 미안해서요. 당신들을 이해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 그러니 너무 쓸쓸해하지 마시라.
그거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2003. 김주익 지회장은 크레인 위에서 혼자 추석을 쇴지요.
주익씨 그렇게 가버리고 그게 그렇게 미안하고 부끄럽습디다.
고향에 다녀온 게...

회장님!
며칠 후면 다시 추석입니다.
부디 추석 잘 쇠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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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8 11:19

1년 365일, 하루 24시간을 투쟁하는 일반노조!

또 터졌다.
하루 24시간도 모자랄 만큼 늘 투쟁이 끊이질 않는 부산지역일반노동조합에 보람상조현장지회가 결성됐다.
고객을 내부모와 형제처럼 정성을 다하는 기업‘ 보람상조에서는 노동자들이 쉬는 날도 없이 일을 하고, 명절이라고 고향에 가는 이가 없고, 3개월 6개월짜리 계약서를 쓰면서도 군소리 없이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남들 사는 것처럼 살아보자 싶어 노동조합을 만들었더니 ’고객의 꿈과 행복을 추구하는 기업’ 보람상조에서는 부당 전보와 해고도 모자라 자기 직원의 맨얼굴에다가 가스총을 난사했다.
보람상조 직원들에게는 삶의 작은 여유와 행복을 꿈 꿀 수는 권리조차 없는 것인가 보다.

 
하느님의 종 보람상조 대표, 그가 전하는 하느님의 사랑은?

서울과 각 지역을 돌려 순회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보람상조 동지들은 매주 일요일이면 부산 이기대공원 입구 주찬양교회앞에서 집회를 가진다.
주찬양교회는 보람상조 대표가 직접 만들고 장로로 있단다.
100평 가까이 되는 아파트에서 자신의 직원을 파출부 쓰듯 부리고,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직원들을 하루아침에 해고하고, 벌써 몇 날 몇 일을 길거리에서 농성을 이어가는 직원들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보람상조 대표.그가 전하고 실천하는 하느님의 사랑은 대체 어떤 것일지 사뭇 궁금할 따름이다.
주찬양교회앞에서 만난 보람상조 동지들은 노동조합을 만든지 불과 한달 여만에, 해고와 거리투쟁까지 이어가고 있음에도 여유가 있고 씩씩해보였다. 그만큼 그들의 요구가 정당하고 당당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많지 않은 대오이기는 하나, 일반노조답게 집회는 끈질기게(?), 하지만 신명나게 진행됐다.
더러는 마이크를 잡고 그동안을 울분을 토해내기도 했고 몇몇 조합원들은 등산을 가는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누기도 했다. 유인물을 받아든 시민들 중에는 뉴스나 언론을 통해 보람상조 투쟁을 접해보신 분들이 계셨던지 “회사가... 못쓰겠네..” 하셨다.
그러자 집회 대오 옆으로 서있던 검은 양복의 남자들이 다가가 팔짱을 끼더니“그게 아니라, 저희가 다시 설명을 해드릴께요” 어쩌구 저쩌구.검은 양복 앞 가슴팍에 “상담”이렇게 쓴 명찰이 붙어있다. 보람상조 직원이란다.
애가 닳았다. 보람상조.


우리나라 대표 상조업체 보람상조, 노동조건은 최악!

보람상조는 부산 동래에서 단층짜리 건물로 시작하여 19년 차인 현재는 영업직원만 3700여명, 회원수 70만의 전국최대 규모의 장례서비스 회사다.
또 최근에는 유명한 연기파 배우를 앞세워 가족같은 이미지로 대대적인 공중파 방송을 통해 현재 대표적인 상조업체로 우뚝 섰다. 실제로 보람상조는 타 상조업체에 비해 가장 많은 회원수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직원수는 가장 적다.
업무는 대게 팀별로 운영되는데, 각 지역별로 한 팀정도가 운영되는데 의정부, 영등포, 성남, 시흥, 천안, 대전, 원주, 전주, 광주, 진주, 울산, 대구, 부산 13개 팀이 있다.
많은 팀은 10명 정도이고, 부산 같은 경우 6명, 울산은 고작 2명으로 운영 된다.
이 인원으로 그 지역의 장례업무를 다 도맡아 하게 되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3억여원의 광고비를 들여 채용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말 또한 믿을 수가 없다.
설사 그렇게 채용이 된다 하더라도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나간다.
3개월, 6개월짜리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뒤 회사의 입맛대로 해고와 채용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회사에 조금이라도 밑 보이면 다음 고용은 장담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일이 워낙 힘들다 보니 제대로 버티는 사람이 없다.
그것은 곧 근로환경이 열악하다는 반증이다.
이에 노동조합에서는 직원을 채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고용을 안정화시키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단순히 먹고 살라고 하는 일이면 이렇게 못하죠~ 사명감입니다!

사실 처음 상조업체에 노동조합이 생겼다고 했을 때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일까 궁금했다.
집회현장에서 만난 조합원들은 대체로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영업을 하시는 분들인가?
“조합원은 장례지도사와 장의 차량을 운전하는 승무원들로 구성됐습니다.
장례지도사는 옛날말로 장의사로 생각하면 쉽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대게 장례지도사들인데 전반적인 장례절차를 알려주고, 도와주는 사람들로 빈소 마련에서부터 입관 및 출상까지의 일을 맡아 하죠“ 이부길 현장대표의 설명이다.
“이 일이 무척 고달프고 힘든 일입니다.
시신을 씻기고 염을 하는 일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쉬운일이 아니거든요.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만이 아니라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죠. 또 육체적으로도 힘을 써야 할 일이 많다 보니 나이가 들면 힘들어서 하지도 못해요~ 저렇게 젊은 직원들도 들어오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다들 나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보람상조 직원들은 24시간 대기근무를 한다.
고객의 장례가 접수가 되면 1명의 장례지도사가 분향소를 설치하고, 입관작업하고 제사상을 차리고 출상때까지 장례에 필요한 전반적인 일을 도맡아서 한다.
이렇게 하면 장례 1건당 2~3일정도가 소요된다.
다른 상조업체들은 보통 한달에 10건 정도를 처리하게 되는데, 보람상조의 경우 한달에 평균 35건을 처리한다.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다른 상조업체들이 2~3일 한 장소에서 머물면서 하는 일을 보람상조 직원들은 장소를 옮겨다니며 여러 건을 동시에 처리한다.
그러다보니 휴일은 꿈도 못 꾼다. 그렇다고 시간외 수당이라던지 휴일수당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사람이 살다보면 몸이 아플수도 있을테고, 집안에 경조사가 생길수도 있지 않을까? 최소한 그정도의 휴일은 보장되겠지 싶어 현장대표에게 물어보았더니 돌아오는 답은 간단했다
우리요? 그런거 없습니다”
아니, 그래도 몸이 아플수도 있지 않나요.
“ 없다니까요~”


최소한의 요구, 돌아온 것은 해고와 부당전보

하루 24시간을 일을 하고, 한달에 집에 들어가는 일이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고, 시간외 수당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더라도, 차라리 그런 일은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의 양심과 자존심을 팔 수는 없었다.
그동안 회사는 직원들로 하여금 회원들이 상중에 경황이 없는 틈을 이용해 애초 계약된 상품외의 다른 부가 상품을 팔 것을 강요했다.
우리나라 사람들 정서상, 마지막 가는 길에 가능하면 좋게 편하게 보내고 싶어하시잖아요.
특히 돈문제로 옥신각신 하는게 고인을 혹시라도 욕보이게 할까봐 크게 토를 잘 안다시죠."
그러다보니 억지 춘향격으로 상품을 더 이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할때면 얼마나 곤욕스러운지 모릅니다. 회사는 고객의 슬픔을 이용하고, 직원들을 앵벌이에 이용해서 돈 챙기기에만 급급할 뿐이죠“
그래서 노조에서는 앞으로 이러한 회사의 각종 부조리에 대해서 함께 알려 나갈 계획이다.
물론 이런 것이 보람상조현장지회입장에서도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회원이 많이 나갈 수도 있고, 회사가 일정부분 어려워 질 수도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은 회사가 곤란 할지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이것이 궁극적으로는 회사를 살리는 길이라 생각한다.
투명한 경영을 통해 회원들과 직원들이 함께 행복해지는 것이 노동조합의 바램이다.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보람상조현장지회는 2009년 6월 13일 노동조합이 결정되고 70여명이 조합원으로 출발하였다.
그러나 회사는 지부장에 대해 지방 센터로 발령을 내는 등 탄압을 시작하여 각 팀장들로 하여금 온갖 회유와 협박을 통해 개별 조합원들을 탈퇴시켰다. 그 과정에서 늘 그렇듯이 회사는 노동조합 탈퇴만 하면 모든 요구조건은 들어주겠다며 온갖 회유와 협박을 동원했다. 그래서 초반 70여명의 조합원에서 현재는 부산과 수도권(성남, 시흥)의 조합원 19명이 남아 있는 상태다. 그나마도 9명이 해고 되었고, 9월 4일 또 일방적인 징계위원회를 개최하여 2명을 더 해고통보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노동조합을 탈퇴했던 조합원들은 현재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그 사람들과의 관계가 껄끄럽지는 않냐는 물음에 이부길 현장대표는 그럴 것도 없단다.
“ 동참하지는 못하지만 우리와 뜻을 같이하고 동조하는 다른 직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비록 개인적인 사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탈퇴하셨던 분들도 있지만, 그 분들도 우리와 같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모금을 하여주시기도 하고 격려도 많이 해주십니다“
노동조합 결정 한달여 만에 해고와 거리투쟁까지 이어가고 있는 보람상조 동지들이 가장 힘든점은 아무래도 금전적인 부분일 것이다.
주중에는 수도권 및 각 지역별 센터로 옮겨다니며 투쟁을 하다보니, 투쟁 경비가 많이 든단다. 거디다 조합원의 대부분이 가장이다 보니 당장의 생계비도 걱정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 불만 없이 잘 견뎌 내주는 것이 가장 고맙다는게 이부길 현장대표의 말이다.
조합원들 대부분이 노동운동의 노자도 모르던 사람들이예요.
그런데도 부산과 여러 지방을 옮겨다니는 힘든 투쟁 일정 속에서도 불평 불만 없이 잘 따라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죠. 물론 각자의 소신과 생각들이 있고, 그동안의 분노가 지금 여기까지 우리를 이끌어준 것이 가장 큰이유지만, 지부장인 나를 믿고 잘 따라주는 것이 너무나 고맙습니다“

 
이제 며칠 후면 민족의 대명절 추석이다.
모두들 그렇겠지만 이들도 처음 시작할 때는 여기까지 오게 될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이번 추석에는 이들이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까?
그들이 추석을 어떻게 맞을수 있을지는 우리의 몫이 클 것 같다.
집회 말미 일반노조 사무국장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 독사의 자식들아! 회개하라."
독사의 자식같은 보람상조 대표는 회개하고, 노동조합 인정하라던 그는 보람상조 대표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독사도 함께 다스려야 겠다고 했다.
일요일만큼은 집에서 좀 쉬고 싶고, 그동안 미뤄뒀던 더 급하고 많은 일이 있기도 하지만, 연대는 그런 바쁘고 어려운 상황속에서조차 조그만 마음을 나누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연대하지 않는 마음, 
우리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그 독사를  몰아내고 보람상조 투쟁 뿐만 아니라, 부산지역의 현안사업장 투쟁에 힘차게 결합 할수 있도록 바래본다.

 

★보람상조 노동지부 카페
http://cafe.daum.net/boramnodong
★보람상조 노동지부 후원계좌
입금계좌:571501-01-211115   (국민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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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8 14:41

환자들 곁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센텀병원 간병인 해고노동자들의 소박한 절규"

 

센텀병원 여성간병인노동자들이 센텀병원 직원이 아니라고 집단해고 당하고 길거리로 쫓겨난지 두 달 째 접어들고 있던 9월 2일 부당해고 철회를 촉구하는 민주노총 집회가 있던 날 채 가시지 않은 늦더위는 살갗을 따갑게 했지만 도시의 빌딩 숲 사이로 보이는 하늘에는 쪽빛 물감위에 떠 있는 뭉게구름은 어느새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음을 느끼게 했다.



많은 노동자와 단체들이 연대를 왔다.
MB정권에 갈수록 탄압의 수위가 높아지는 자본에 대응하여 자신의 투쟁도 버거울텐데 구리 빛 얼굴로 매연과 소음으로 범벅이 된 도로위에 우드락 선전전을 해주는 예선지회 노동자, 노동자한테 해고는 살인과 같다는 것을 가슴으로 느끼고 있는 SPX해고노동자, 민주노총 소속은 아니지만 부산택시연합노동조합, 그렇게 자신들의 사업장 담을 넘어 수영로타리에 있는 센텀병원 앞에 모여 집회를 했다. 센텀병원 간병인해고조합원들이 무조건이라는 곡에 직접 개사한 노래를 불렀는데 그들의 심정을 고스란히 노랫말에 옮겨 놓은 것 같았다.



연대 온 동지들이 바쁜 일정관계로 떠나고 간병인해고노동자들만 남아 부당해고 철회하고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선전전을 시작했는데 인도에 질서정연하게 앉던 조합원들이 봉지 속에서 작은PT 병을 꺼내 두 개씩 손에 쥐고 노동가요에 맞춰 두드리기 시작했다.
차량소음이 심한 주변 환경 속에서 스스로 개발한 선전방법이었는데 이색적인 선전방법에 지나가던 시민들의 관심이 집중 될 뿐만 아니라 그늘막하나 없는 노상투쟁을 하면서 노동가요에 맞춰 병을 두드기다보니 저절로 흥도 나고 재미가 쏠쏠했다. 나이든 여성노동자들한테 꼭 맞는 선전방법인 것 같았다.

팔이 아플 무렵 되면 센텀병원 간병인해고노동자들이 돌아가면서 마이크를 잡고 자신들이 겪었던 고통과 서러움 그리고 분노를 토해냈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간병인노동자들이 겪어온 또 다른  고단한 삶을 들어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왜 우리가 센텀병원 직원이 아닌가요?


우리사회에서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폭은 작다.
특히 중년의 여성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직업의 종류는 그리 다양하지 않는데 요즘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이 2007년 7월 1일 시행되면서 요양보호사자격취득이 중년여성들한테는 인기 직종이다. 그래서인지 간병인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늘어나고 있고 이들 역시 한 간병인협회에서 1개월 이론교육과 1개월 현장교육이 끝나면 간병사자격증을 취득하게 된다.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 또는 가족들이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한번쯤은 간병인도움을 받은 적이 있을텐데 보통간병인들은 병원병실에 자신의 명함 또는 자신이 소속된 간병인 협회의 명함을 배포하면서 환자나 보호자와 직접 계약을 맺는다.
 24시간 간병비용이 6만 원 선인데 비해 센텀병원 경우는 다른 간병인 채용과 다른 과정이 있다.

2005년 8월 1일부터 ‘보호자가 없는 병동’이라는 사업계획을 갖고 8인실 병동 7개를 운영하기 위해 간병인 협회에 간병사 추천을 의뢰했고 간병인 협회에서는 간병사한테 연락을 하여 센텀병원에 채용면접을 보라는 통보를 해주었다.
간병업무를 간호과에서 맡아 하기 때문에 간호과장이 직접채용면접을 봤다.
면접시 개인 신상 및 가족관계 등 다양한 질문과 임금 및 지급방법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또한 채용면접을 본다고 다 채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부 간병인들을 선별하여 채용을 하기 때문에 함께 면접을 보러갔던 동료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채용면접을 통해 합격을 하면 센텀병원에서 간병인 교육을 실시하는데 간호과장을 비롯해서 물리치료실, 그리고 센텀병원 원장이 교육을 실시했는데 병원원장 경우 센텀병원에 대한 소개 및 향후 병원 발전 전망까지 설명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채용되어 근무하다가 간호과장 마음에 들지 않거나 어떤 문제가 발생되면 간호과장 임의대로 다음날부터 출근을 하지 말라며 퇴사를 강요하여 병원을 그만두게 하는 예도 종종 있었다.

 

온갖 병원행사에 참여를 강요받으며 일했어요?

교육이 끝나고 8인실 공동병실에 간병인 2명씩 배치 받아 근무를 하게 되는데 환자만 돌보는 것이 아니라 병원시설물 청소 및 병원행사에 참여하고 협조해야했다.

냉장고청소 등 병원시설물을 청소하는 것은 기본적인 업무이며 환자들을 위해 독서대여를 해주고 있는데 병원에서 간병인노동자들한테 ‘문고를 만들 예정인데 각자 집에 있는 책을 가져와라. 없으며 새로 구입해서 가져오라’고 하여 책을 모아 문고를 만들고 리어카에 책을 싣고 각 병실마다 다니면서 환자들한테 책을 대여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매일 식사 때가 되면 환자들한테 식사배차를 해주고 빈 식판은 다시 식당을 갖다 주어야 했다. 바자회할 때는 간병인노동자한테 바자회 물건 2점씩과 성금3천원씩 내라고 하여 내기도 했으며24시간 교대근무를 하고 피곤한 간병인노동자들을 퇴근시키지 않고 찌짐, 떡볶이 등을 만들어 팔도록 지시했다.

 

애들 키우고 먹고살자니 더러워도 해야 했죠?

말이 좋아 간병인이지 솔직히 더러운 치다꺼리 다해야했죠, 환자들이 토하고 싸고 흘리고 하는 것 쓸고 닦고 하다보면 속에서 헛구역질 다나옵니다. 그때마다 자식들이 눈앞에 선해 속으로 삭히며 일해야하죠.
가끔 간호과장이 자신이 아는 지인이라며 공동병실이 아닌 일반병실에 입원해 있는 환자 간병을 부탁하면 힘들어도 참고 해야 되었습니다. 괜히 못한다고 했다가는 쫓겨나기 십상이니 더러워도 참아야했지요. 그것뿐만 아니라 일하는게 간호과장 마음에 안들면 병원복도에 일렬로 세워놓고 “밥차 배식하기 싫으며 그만둬라 아줌마들 줄서있다. 노인병동 가봐라 얼마나 힘든지 아나”하며 자신보다 한참이나 나이 많은 간병인노동자한테 모진소리들 톡톡 늘어놓았지요?
이렇게 참고 일해 왔는데 이제 와서 센텀병원 직원이 아니라고 공동병실 간병인 전원을 해고 시키니 너무 억울하기만 합니다.


센텀병원 간병인해고노동자들은 단순히 열악한 근무환경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들이 24시간 교대로 근무하면서 받아온 임금은 최저임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임금을 받아왔는데 최저임금이 인상이 되고 물가가 상승해도 2005년부터 해고되기 전까지 102만원의 임금을 받아온 것이다.

 

2005.8

2005.9~

2006.12

2007

2008

2009

최저임금시급

2,840

3,100

3,480

3,770

4,000

월소정근로시간209시간

(주40시간)

593,560

647,900

727,320

787,930

836,000

월소정근로시간365시간

1,036,600

1,131,500

1,270,200

1,376,050

1,460,000

연장근로수당

276,900

302,250

339,300

367,575

390,000

야간근로수당

1981,700

209,250

234,900

254,475

270,000

연월차수당

43,191

47,146

52,925

57,335

60,834

받을 수 있는 법정임금

1,548,391

1,690,146

1,897,325

2,055,435

2,180,834

받은임금

1,020,000

1,020,000

1,020,000

1,020,000

1,020,000


매일 출근하면서 병원 입구에 환자가 만족하는 병원, 직원이 만족하는 병원,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병원이라는 가식적인 문구를 보면서 일해야 했던 간병인노동자 당사자들은 얼마나 분통이 터졌겠는가? 정말로 환자들을 위하는 병원이라면 환자를 돌보고 있는 간병인에 대한 대우가 합법적이고 정당해야 했을 것이다.




이제! 엄마라는 이름에서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센텀병원 간병인해고노동자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노동자라는 이름에 낯설고 어렵다. 누구의 엄마로 불러왔고 살아왔던 그녀들이 이제는 엄마라는 이름대신 노동자라는 이름을 찾고자한다. 우리사회에서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살수가 없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수년동안 병원과 집안 살림밖에 모르며 살아왔던 그녀들이 길거리에서 구호도외치고 가슴속에 응어리진 이야기들도 끄집어내고 부끄럽지만 지나가는 시민들한테 억울한 사정을 알리는 유인물도 나눠주고 한여름 뙤약볕 속에 조금씩 조금씩 아줌마가 아닌 엄마가 아닌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었다.

처음엔 길거리에서 먹던 김밥이 너무 창피해 입에 넣기도 힘들었는데 이젠 꿀맛으로 변하고 그렇게 무서워 웠던 간호과장과 병원원장을 보면 원직복직 시켜달라고 외쳐대기도 한다.
이제 조금씩 알 것 같다. 수년 동안 부려먹던 우리를 내쫒은 이유를...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센텀병원의 가식적인 이미지관리에 희생되는 간병인이 아닌 자신의 권리위에 당당한 노동자로 살아갈 것이다. 센텀병원 간병인해고노동자의 이름으로 끝까지 싸워 환자들 곁으로 돌아가 그들이 빨리 완쾌되어 가족들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일하는 그날까지 끝까지 싸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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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jordans4forcheap.com BlogIcon Jordan retro 4 2012.06.07 17:0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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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www.foampositesforcheap2012.com BlogIcon Foamposites for cheap 2012.06.25 15:3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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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31 11:05

예선 노동자들은 지금 투쟁의 바다를 항해중!

점심밥을 먹고 나른한 오후 전화 한통을 받았다.
‘ 그냥 시민인데요...‘하고 조심스레 말을 꺼내시던 그 분은 아마도, 출근길인지 혹은 퇴근길인지, 예선 노동자들이 건냈던 유인물을 받아 보았던 모양이다.
아직도 이런 곳이 실제로 있다는 사실에 너무 놀랍다며, 유인물을 만들 때 연락처와 계좌번호도 함께 넣어달라는 얘기였다.
투쟁하는 현장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힘들지만, 작지만 다른 방법으로도 도움을 줄 수 있지 않겠냐는 그분의 마음이 따뜻하게 전해졌다.
다음번 예선 노동자들을 만나면 꼭 전해드려야겠다.
현장에서 투쟁하는 이들에게 이런 한마디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른다.

예선 노동자들의 파업이 오늘로써 22일차가 되었다.
요즘은 파업한번 시작하면 한달이고 두달이고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보니, 22일이라 하니 아직 갈길이 한참이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드니 큰일이다.
6월 24일 노동조합을 설립한 후 거의 한달 여 만에 파업까지 이어가고 있는 예선 노동자들은 파업이니 집회니 ‘투쟁’에 있어서는 아직도 초보 조합원들이지만 이들 중 대부분이 오십을 훌쩍 넘기고 거친 바닷바람 맞으며 배위에서 살아온 30년 경력의 베테랑 마린보이들이다.
하지만 칼바람과 넘실대는 파도에 그을린 구리빛 얼굴과 다부진 몸이 어느 청년들 못지 않게 든든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투쟁의 현장에서 만나는 예선 노동자들은 늘 활기차고 씩씩한 모습이다.
집회나 문화제를 하는 자리에서는 언제나 줄맞춰 앉아 어깨각까지 세워 앉아 있는 모습이 오히려 귀엽기까지 하시다.

예인선 노동자라고 하면 다소 생소하다. 예인선은 뭐고, 무슨일을 하는 것일까?
항구에 들어온 큰 배들은 스스로 부두에 정박할 수가 없다. 큰 배들은 항구 앞에서 예인에선에 의해 부두에 접안해야 하는데, 이때 예인선이 큰배를 밀거나 당겨서 목적한 위치에 정박시키는 일을 한다. 출항할 때도 마찬가지로 다시 예인선으로 항구 앞까지 이동시키는 일을 한다. 그 밖에도 항상 부두에서 24시간 대기하며 배수리도 하고 배에 페인트 칠도 한다.
그리고 2명이서 24시간을 근무하다 보니 휴가따위는 꿈도 꾸지 못한다.
어쩌다 집에 경조사가 있어 며칠 쉬고 오는 날에는 그동안 남아 있는 동료가 혼자서 몇날 몇일이고 근무를 해야 하는 것이다. 36시간이고, 48시간이고...
함께 일하는 짝이 올때까지 몇날 몇일이고 북박이를 해야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쉬러 갔던 사람은 편한가? 그것도 아니다. 복귀하는 그 순간부터 그동안 쉬었던 날만큼 또 꼽배기 근무를 서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휴가 갈 엄두가 나겠는가?
남들 다 가는 여름휴가는 꿈도 못 꿀 일이며, 심지어는 집안이나 친구들의 경조사도 맘 편하게 가지 못한다.

이런 예인선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자 예선사들은 “선장은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는 노동부의 질의회신을 앞세워 선장들이 노조를 탈퇴하지 않으면 교섭에 응할 수 없는 입장을 전달해왔다. 한국예선협동조합이 질의한 내용에 대한 노동부 답변도 선원법에 근거하고 있다.
이에 한 선장은 “ 여태껏 손톱만큼도 선장이라도 대우해 준적도 없으면서 이제 와서 선장이라도 사용자라고 남들 다 하는 노동조합 못한다니 무슨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나. 배안에 물건 한가지도 마음대로 옮기지 못하고, 사무실 일하는 직원들 지시까지 따라야하는 우리가 어떻게 사장인가” 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현행법상 선원법 적용을 받는 노동자들 경우 외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고, 항만예선지부 조합원들은 내항 노동자들이다.
이에 모란호 선장인 김강석 조합원은
“사측에서는 선원법상 선장은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말도 안된다. 법규정에 항내만을 운항하는 예인선은 선원법 적용에 제외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 이미 법제처에서조차도 예인선은 선원법이 아니고 근로기준법 적용대상이 된다고 유권 해석을 내린 상황이다” 라며
“ 현재 여수, 광양, 인천항의 예인선 선장들도 합법적으로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활동하고 있는데 왜 유독 부산 울산만 안된다는 건지 모르겠다” 라고 했다. 정말 답답 할 노릇이다.
법제처의 해석과 같이 예선노동자들을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자로 인정하고 하루빨리 이를 시행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예선사들에 대해서 강제조치를 해야 할 정부와 관계기관들은 오히려 예선사들이 합심하여 항만에 민주노조의 싹을 자르고 예선노동자들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을 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선장을 분리시키려 하는 것은 치사한 방법이다.

예선사들의 선원법 적용을 주장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근로기준법이 아닌 선원법을 적용하게 되면 근로시간 연장에 따른 시가외수당이라던지 유급휴가, 고용의무 준수등과 같은 사측의 비용을 그만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까지 나서서 예인선 노동자들에게 선원법을 적용하려고 법개악을 시도하는 것은 법을 잘 모르는 예선노동자들을 무시하고 기만하는 행위이다.
예인선 노동자들의 요구는 대단하지 않은 것이다. 노동조합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동안 노예처럼 살아왔던 이들이 지금이라도 좀 제대로 살아보자 싶어 만든 노동조합이다.이들에게는 너무나 소박하고 정당한 요구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소리에 예선사들은 오히려 직장폐쇄로 맞서고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지난 8월 20일 예인선 노동자들을 위한 서면 촛불문화제에서 만난 장은수 조합원은 기관장이다. 장은수 조합원은 얼마전 중학교 다니는 딸이 구깃구깃한 천원, 오천원짜리를 건내며“아빠, 꼭 승리해” 라고 했다면서 “이보다 더 값진 승리는 없을 것 같다” 라고 했다.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꼭 승리해서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겠다는 다짐을 하던 장은수 조합원의 얼굴이 아직도 선명하다.
예인선 노동자들은 태풍이 오는 날도 바다로 나간다.
심지어 해양경찰들도 귀항을 하는데, 예인선 노동자들은 목숨을 걸고 바다에 나가 선박들을 피항시켜야 한다.
그들이라도 왜 무섭지 않을까. 그들이라도 왜 자신의 목숨이 아깝지 않을까.
돌아가면 사랑스런 자식들과, 따뜻한 밥상을 내올 아내가 있는 이들이다.
이제라도 인갑답게 살고 싶다는 그들의 바램이 꼭 이러지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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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7 15:22

사회적 합의 파기,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 파기,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를 위한
공무원·교원 공동 기자회견

 

'사회적 합의안' 파기하는 공무원연금 개악, 즉각 중단하라!

 

2009.7.13(월) 09:30 국회 본관 앞에서는 민주공무원노조 조합원 20여명을 비롯한 '올바른 공무원연금법 개혁 공동투쟁본부' 약 100여명이 모여 '사회적 합의 파기,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를 위한 공무원·교원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다.

 

지난 7월6일, 국회 행정안전위 법안심사소위는 한나라당 및 자유선진당 소속 위원 6명만이 참여한 채, '사회적 합의' 형태로 제출되어 있는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중 지급률을 1.9%에서 1.85%로 추가삭감키로 원칙적으로 합의하고, 차기 법안심사소위에서 처리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공무원연금법 개정 '사회적 합의안'은 연금개정의 안정을 위해 공무원노조·단체, 전문가, 시민단체, 정부 등이 총 24차례에 걸친 협의 끝에 마련한 것으로써 공무원의 기여금을 현행보다 무려 약 27%나 삭감하는 등 100만 공무원의 희생을 토대로 만들어진 방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 행안위 일부 의원들은 연금기여율의 대폭적인 인상은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연금 지급률을 더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연금공투본은 공무원연금법 개혁안의 국회 처리에 즈음하여 '국회가 그래도 뭔가를 고쳐야 제 역할을 다 한 것이다'라는 식으로 이것저것 건드려 보는 식의 개정논의는 연금제도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며, 그토록 어렵게 도출한 사회적합의를 무시하는 처사임을 오늘 기자회견을 통해 엄중 경고하였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국회에서 열릴 예정인 법안소위의 방청을 위해 국회로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행안위는 방청 자체를 거부하고 있으며, 한 사람도 들어갈 수 없다는 입장이며, 이에 참여한 소속단체 회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공무원 희생만 강요하는 지급률 추가 삭감 절대 반대한다!

'사회적 합의안' 파기하는 공무원연금 개악, 즉각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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