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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3 17:54

캄보디아 여행기②) 극복하기 힘든 캄보디아를 향한 연민


마지막 날 방문한 곳은 캄보디아 수도인 프놈펜 외곽에 위치한 도시빈민·철거민들의 마을이었다. 캄보디아 방문 내내 경악을 금할 수 없었지만, 갈수록 심각한 상황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우리는 얼랑깡안마을과 언동마을을 방문했는데, 뽀이뻿의 시골빈민촌에 비해 이곳은 상황이 더욱 처참했다. 배수시설이 제대로 없어서 무릎 높이까지 물이 마을 전체에 차있고, 나무로 대충 지은 집들은 거지촌이라는 느낌이 들만큼 남루했다. 마을 곳곳에 쓰레기가 물에 둥둥 떠다녔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집들이 즐비했다. 파리 모기 같은 해충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물에서 세수를 한다. 집안에 까지 무릎높이의 물이 들어찼다. 이 와중에 비좁은 공간의 집들이 다딱다딱 붙어있다. 이 상황을 어찌 글로 형용할 수 있을까. 글을 쓰면서 떠올려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아…….” “아…….”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다. 정말 울고 싶다. 온몸에 힘이 빠진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 도시빈민·철거민촌은 캄보디아 독재정권과 가진 자들에 의해 강제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원래 이 사람들은 프놈펜 도심에 살고 있었는데, 정부에서 관광객들 보기에 안 좋고 각종 개발 사업을 해야 한다며 이곳으로 강제이주를 추진했다. 당연히 이들은 철거에 반대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이들의 집들만 전부 타버리는 대규모 방화사건이 있었다. 누구의 짓일까! 모든 사람이 알고 있지만, 범인은 당연히 밝혀지지 않는다. 그 후 이들은 프놈펜 외곽으로 강제이주를 당하게 되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마을이 바로 우리가 방문한 얼랑깡안마을과 언동마을이었다. 가진 자들의 행태는 전 세계적으로 어찌 이리도 닮았을까. 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외국인들 보기에 안 좋다며, 대대적으로 철거된 서울의 달동네들. 거리 곳곳의 노점상들.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6명이나 화형당해버린 2009년 용산의 어느 빌딩 옥상. 부산 해운대 승당마을……. 도심의 높은 빌딩에 가려진, 우리네 버려진 삶이다.

캄보디아 연수 내내 우리는 대부분 천주교 신부님이나 수녀님이 운영하는 단체를 방문했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는데, 캄보디아 독재 정권이 종교단체가 아닌 약간이라도 정치적인 색채가 있는 NGO단체는 허용하지 않는 것도 있었고, 우리가 방문한 곳이 모두 충분히 검증된(?) 곳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검증이라…….?? 사실 좀 표현이 이상하긴하다. 처음 일정표를 봤을 때 죄다 종교단체 방문이라서 고개를 약간 갸웃둥했었다. 특히 나는 믿는 종교가 없었기 때문에 방문하는 곳을 너무 편향적으로 정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그런데 그곳의 종교인(?)들을 만나고 나서야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다. 그들은 특정 종교인이라기 보단 사회운동가에 가까웠다. 그들의 헌신적인 삶만을 보고 든 생각이 아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반티에이쁘리엡에서 첫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거기 신부님께서 내일 아침6시20분에 미사가 있다며, 우리 일행과 동행한 다른 신부님에게 참석하라고 했었다. 그 때까지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문득 궁금증이 들어서 물었다. “캄보디아는 불교국가 인데, 이곳에는 천주교 신자가 몇 명이나 되요?” 그랬더니 돌아오는 답변이 “한명도 없어요!”였다. 매일 아침에 미사를 하는데, 늘 신자 한명도 없이 신부님과 수사님들끼리만 한다는 것이다. 천주교 신부님들이 91년부터 반티에이쁘리엡에서 장애인재활사업을 했는데, 단 한명의 신자도 없다! 신기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그런데 신부님의 답변이 걸작이었다. “지금 우리가 학생들에게 미사에 참가하라고 한다면, 아마 거의 대부분 참가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우리의 권유는 뿌리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삶의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의 권유를 고사하겠습니까? 하지만 이는 평등하지 못한 것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전도랍시고, 미사 참가를 권하는 것은 옳지 못한 겁니다.” 반티에이쁘리엡 뿐만이 아니었다. 마지막 날 방문했던, 한국외방선교회가 운영하는 코미소직업학교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곳 신부님께서는 “과거 선교가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거나, 그 나라 민중들의 사상을 무시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선교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선교는 종교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정신을 전하는 것입니다. 즉 우린 종교의 정신인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라고 나직이 말했다. 충격이었다. 선교는 종교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정신을 전하는 것! 몇 번이고 되뇌었다. 과연, 검증(?)된 곳을 방문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물 부족 국가 2위. 통계조차 낼 수 없을 만큼 방치되어 있는 에이즈 환자들. 산업시설도 부족하고 일자리도 없는 절대 실업의 상태. 구정물에 세수를 하고 빗물을 식수로 이용해야만 하는 환경. 굶주림에 익숙해진 아이들……. 캄보디아는 UN이 지정한 세계 최빈국 중에 하나다. 이 최빈국에서도 최빈민층에 위치한 사람들의 삶은 직접 보고 느끼지 않고는 어떤 문장으로도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 그런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고, 어깨가 어스러지는 듯했다. 그런데 그들과 함께 살아가며 그들을 위한 사업을 오랫동안 묵묵히 진행하는 현지 활동가들은 대체 그 정신의 크기가 얼마 만큼일까! ‘나를 버리고 간’ 전태일의 정신을 정작 우리 노동운동가들은 망각하고 있는데……. 캄보디아에서 살아있는 전태일들을 보았다.

내가 무척이나 존경하는, 그래서 그를 만나러 연고지도 없는 충청북도까지 가게 만든, 어느 맑스주의자는 “연민이라는 감정은 사회구조의 변화를 위한 계급적인 인식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동의한다. 민중의 해방을 위해서는 ‘연민’이 아니라, ‘투쟁’이 필요하다. 장애해방은 장애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고, 장애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극복’은 자기 노력으로 얼마만큼의 달성이 가능하지만, ‘인정’은 전 사회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 연민으로 ‘극복’은 가능하지만, ‘인정’은 쉽지 않다. ‘인정’은 투쟁으로만 가능하다. 충북장애인권연대에서 일 할 때도, 지금 민주노총에서 노동운동을 하면서도, 나의 지배적인 사상이다. 그런데 약간의 수정이 필요해졌다. 수차례의 내전을 통해 숨죽이며 살기를 강요받았던 민중들에게, 당장 먹을 밥도 없는 민중들에게, 삶의 의지가 상실된 민중들에게, 오늘의 총궐기는 불가능하다. 지금 당장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연민’이었다. 아니, 실은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무기력함과 허무와 우울을 달래기 위해 필요한 건 ‘연민’이었다. 나름 깐깐했던 노동해방 사상을 잠시 접고, 내 마음이 달래질 때까지 연민을 느낀다.


캄보디아. 일주일의 연수기간 내내 마음 한구석을 우울하게 만든 나라. 이제 그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노력해보련다. 캄보디아가 내게 준,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힘을 남한의 노동자민중들을 위해 써보련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입만 살아서 중구난방인 참새떼에게 물어본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다리만 살아서 갈팡질팡인 책상다리에게 물어본다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져
난마처럼 어지러운 이 거리에서
나는 무엇이고
마침내 이르러야 할 길은 어디인가
갈 길 몰라 네거리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웬 사내가 인사를 한다
그의 옷차림과 말투와 손등에는 계급의 낙인이 찍혀 있었다
틀림없이 그는 노동자일 터이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어요 선생님은
그의 물음에 나는 건성으로 대답한다 마땅히 갈 곳이 없습니다
그러자 그는 집회에 가는 길이라며 함께 가자 한다
나는 그 집회가 어떤 집회냐고 묻지 않았다 그냥 따라갔다
집회장은 밤의 노천극장이었다
삼월의 끝인데도 눈보라가 쳤고
하얗게 야산을 뒤덮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추위를 이기는 뜨거운 가슴과 입김이 있었고
어둠을 밝히는 수만 개의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고
한입으로 터지는 아우성과 함께
일제히 치켜든 수천 수만 개의 주먹이 있었다
나는 알았다 그날 밤 눈보라 속에서
수천 수만의 팔과 다리 입술과 눈동자가
살아 숨쉬고 살아 꿈틀거리며 빛나는
존재의 거대한 율동 속에서 나는 알았다
사상의 거처는
한두 놈이 얼굴 빛내며 밝히는 상아탑의 서재가 아니라는 것을
한두 놈이 머리 자랑하며 먹물로 그리는 현학의 미로가 아니라는 것을
그곳은 노동의 대지이고 거리와 광장의 인파 속이고
지상의 별처럼 빛나는 반딧불의 풀밭이라는 것을
사상의 닻은 그 뿌리를 인민의 바다에 내려야 파도에 아니 흔들리고
사상의 나무는 그 가지를 노동의 팔에 감아야 힘차게 뻗어나간다는 것을
그리고 잡화상들이 판을 치는 자본의 시장에서
사상은 그 저울이 계급의 눈금을 가져야
적과 동지를 바르게 식별한다는 것을...
                                              <사상의 거처 / 김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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