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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7 11:19

캄보디아 여행기①) 눈물 한방울, 희망 한줌...캄보디아!

 

올해도 지역의 몇몇 활동가들이 민들레 기금으로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습니다.
민들레 기금이란 지역 ngo활동가들의 자기발전과 재충전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기금으로 2005년 1월 발족한 작은 기금입니다. 열악환 환경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역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지치지 않고 변화를 모색하고, 재충전과 시야를 넓여 부족한 점을 채워 다시 실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올해 참가자 중 민주노총 부산본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승호동지의 생생한 캄보디아 여행기를 두 차례에 걸쳐 싣고자 합니다.
캄보디아 여행을 다녀온 후 캄보디아의 예쁜 딸이 생겼다는 그,  캄보디아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왔는지 함께
나누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캄보디아.

일주일의 연수기간 내내 마음 한구석을 우울하게 만든 나라.

다녀온 지 한 달이 지나 연수 감상문을 적는 이 순간까지 처음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여전히 ‘우울’이다. 빈민촌의 아이들과 어우러질 때는 그렇게도 즐겁다가 이동을 위해 승합차에 오르면 가슴이 뻥 뚫린 듯 멍해지는……. 캄보디아에서의 일주일은 조울증에 걸린 사람마냥 즐거움과 우울의 반복이었다. 그래서인지 돌아와서 사람들이 “재미있는 여행이었냐”고 물을 때마다, “음……. 굉장히 충격적이고, 비참했다. 그래서 참 좋고 즐거운 여행이었다”고 답했다. 우울의 기억을 더듬기가 싫었나보다. 그래서 다이어리에 ‘연수보고서 쓰기’라고 한 달 전부터 적어놓고는 하루하루 미루기만 했다. 사실 지금도 피하고 싶다. 그러나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의 무게를 온통 짊어지고 살아가는, 그러기에는 너무나 작고 어린, 캄보디아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느끼려고 노력하며, 그들과 함께한 기억을 더듬어본다.

많은 세상 사람들은 캄보디아하면 화려하고 웅장한 앙코르와트를 떠올리지만, 내게는 그것조차도 ‘우울’의 연속이었다. 앙코르와트라는 거대한 사원을 건설하기 위해 수천수만의 노예들과 인민들이 고된 노동에 시달리며 피와 땀을 흘리며 죽어갔을 것이다. 거대한 제국은 영광스러운 역사가 아니라, 수치스러운 역사다. 그 거대한 규모만큼의 약탈, 강간, 살인이 병행되었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있어 한반도의 역사 중 가장 치욕스러운 역사는 바로 고구려의 역사다. 오늘날 남한 사회에서 국가주의자들의 가장 큰 오류가 바로 ‘제국’이 가지는 이러한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과거의 앙코르와트가 약탈, 강간, 살인, 착취의 산물이라면, 현재의 앙코르와트는 ‘오빠 이것 예뻐요. 1달러, 1달러!’를 끊임없이 소리치는, 남한에서 태어났다면 아마도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음직한, 아이들의 비극적인 생존 현장이다. 그마저도 상당수는 누군가의 강요에 의한 앵벌이 노동이라고 하니, 앙코르와트 아이들의 눈을 쳐다보기가 어렵다. 캄보디아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역사라는, 동남아시아 일대를 전부 다스렸다는, 그 제국의 상징물인 앙코르와트는 그런 의미에서 ‘우울’의 연속이다.

<화려하고 웅장한 앙코르왓트, 이 거대한 제국은 영광스런 역사가 아닌 고된 노동과 착취의 역사였음이리라..>

 

<"1달러,1달러"를 끊임없이 외치는 아이들, 앙코르와트 아이들의 눈을 쳐다보기가 어렵다>


캄보디아 연수에서 1일차에 앙코르와트를 방문한 것을 빼고는 관광(?)은 없었다. 물론 그 조차도 언급한 것처럼 절망적이고 우울한 감정과 함께해야 했지만……. 2일차부터 본격적인 연수가 시작됐다. 연수의 방식은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NGO나 종교단체에 방문해서 그 지역의 상황과 활동내용 등을 듣고, 직접 현장을 순회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10곳 남짓이었는데, 대체로 그 지역에서 가장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돕는 곳이었다. 우리는 뽀이뻿이라는 태국과의 국경지대에 있는 농촌을 둘러보기도 했고, 반디쁘리엡이라는 장애인재활센터도 방문하고, 도시빈민·철거민들이 강제 이주를 당한 얼롱깡안마을을 가기도 했다. 각각의 사연은 조금씩 달랐지만, 그들의 처참한 삶은 같았다.

 
뽀이뻿에서는 ‘뽀이뻿프로젝트’라는 것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주로 2가지의 사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너무 가난해서 취학연령임에도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학교 보내주기 사업’이고, 다른 하나는 돈이 없어 방치되어 있는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치료 및 영양보급사업이었다. 이 사업의 진행방식에서 눈에 띄는 것은 당사자들에게 직접 돈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령, 학교 보내주기 사업에 선정된 아이가 있으면, 부모들이 아이를 학교에 다니게 하면, 그 가정으로 한 달 단위로 먹을거리와 생필품을 지급한다. 에이즈 환자 영양보급도 마찬가지로, 마을 보건소로 직접 찾아오거나 활동가들이 각 가정으로 방문해서, 환자들이 영양식품인 ‘두유’를 먹는 것을 확인해야만 한다. 이는 돈만 받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거나, 두유를 배고픈 다른 가족들에게 먹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가난의 극치에 이른 사람들에게 학교와 두유는 사치품일 수도 있는 현실이다. 남한의 아이들이 너무나 쉽게 누리는 것들이 뽀이뻿의 아이들에게는 애타게 갈망하는 것이 된다.

 

이 사업으로 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는 약 80명이라고 한다. 이들을 위한 비용은 모두 외국인들의 성금이란다. 부산에 있는 아시아평화인권연대라는 단체를 통해 한국인들이 약 40명의 아이들을 후원하고 있고, 스페인 사람들이 나머지 약 40명을 후원하고 있다고 한다. 캄보디아 정부는 가난한 민중들을 위한 정책에서 손을 놓고 있단다. 97년 쿠데타로 집권한 훈센 정부는 현재까지 10년을 넘게 독재정치를 하면서 온갖 비리와 착취로 일관하고 있었다. 남루한 집에서 제대로 끼니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뽀이뻿에만 수천 명이나 되는 에이즈 환자들을 위해, 캄보디아 정부가 하는 일은 ‘nothing’이다. 이렇게 방치된 민중들에게 NGO나 종교단체들은 그들의 정부보다 더욱 믿음직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남한의 민중들에게 있어 나는 혹은 내가 몸담고 있는 민주노총은 얼마나 믿음직한 존재일까!’ 캄보디아에서 헌신적으로 일하는 활동가들을 보며 혼자 조용히 되뇌어 본다.

 

<가난하고 병든 민중들을 위해 캄보디아 정부가 하는일은 'nothing'이다>


구정물에서 뒹굴고 있는 굶주리고 헐벗은 아이들을 보면 누구나 가장 먼저 ‘연민’의 감정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표정은 의외로 밝았다. 빈민촌에 방문할 때마다 그들의 비극적인 생존 현장에 놀랐고, 너무나 밝은 그들의 표정에 또 한 번 놀랐었다. 환경에 적응한 것일까? 아니면 행복 추구의 꿈을 포기한 것일까? 둘 다 사실일지도 모르겠으나, 아마도 그것보다는 우리의 시선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입장에서 ‘이러이러한 삶이 행복한 것이다’라고 규정지어 놓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 내 친구들이, 나의 가족들이, 민주노총이라는 빨갱이집단(?)에서 일하는 나를 보며, ‘넌 참 위험하고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규정하는 것처럼. 어쨌든 빈민촌의 아이들과 어울릴 때 참 즐거웠다. 사소한 것에도 너무 환하게 웃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들의 동심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자 해맑은 얼굴로 신기해 하는 아이들, 사랑스런 그들의 동심을 지켜주고 싶다...>


뽀이뻿 다음으로 돈보스코학교, 시스폰 성당, 바탐방 성당, 따헨 성당, 원불교무료병원을 방문했다. 각각 조금씩 방식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체로 그 지역의 최빈민층들을 위한 교육, 의료, 복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캄보디아 연수 5일차에 우리가 방문한 곳은 반티에이쁘리엡라는 장애인재활센터다. 캄보디아는 오랫동안 내전을 겪은 나라다. 그 과정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처형을 당하거나, 지뢰사고로 신체장애를 입게 되었다. 반티에이쁘리엡은 내전 당시 크메르루즈군의 살육현장이기도 했으며, 통신군부대, 감옥, 공장 등으로 활용되었다가, 1991년에 장애인재활센터로 바꿨다고 한다. 갈등과 상처의 상징이었던 곳이 치유의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반티에이쁘리엡에서는 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조각, 전기전자, 기계, 농업, 재봉 등 다양한 기술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다. 91년부터 현재까지 졸업자가 총 1,500여명에 이르고 있단다. 경제적 빈곤과 함께 열악한 사회인식에서 비롯된 편견의 테두리에 갇혀 이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장애인들에게 반티에이쁘리엡은 새로운 희망을 선물해오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외부의 원조나 도움 속에 묻힐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것. 밥을 먹여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밥 먹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 이것이 반티에이쁘리엡의 선물이었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것, 그것이 반티에이쁘리엡의 선물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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