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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8 14:14

'애자'를 보셨나요?


조남호 회장님!
공사다망하신 분이라 별 기대없이 하는 질문이긴 합니다만, 혹시 ‘애자’라는 영화를 보셨는지요?
만약 그 영화를 보셨다면 같은 하늘아래 같은 세대를 사는 ‘우리’가 유일하게 같이 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애자라는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더군요.
어린 시절 장면을 보니 저랑 좀 비슷하기도 해서 뜨끔한 장면도 있긴 했습니다만 근본적으로는 다릅디다.
고분고분하진 않은 한마디로 부모 애깨나 좀 먹이던데, 급기야 홀어머니가 딸내미 담임 선생님께 불려 갑니다.

“우리 아가 문제가 좀 있십니까?”
“딴 걸 다 떠나서 야가 비오는 날은 학교를 안 옵니다”
“니 학교 간다카고 나가서 어데로 갔노?”
“바다”
“뭐어? 바다? 바다는 말라꼬 가는데?”
“시 쓸라꼬”


비 오는 날 학교를 안가는 건 저랑 비슷하고 시 쓰러 바다를 가는 건 달랐습니다.
저는 우산이 없어서 학교를 못 갔거든요.
우산이 없어서 학교를 못 갔다. 혹시 이런 말이 이해가 되시나요?
가난한 시골의 그것도 형제 많은 집에서(참고로 저희 집은 5형제 였습니다만) 비가 온다든지, 한날 한시에 소풍을 간다든지, 같은 날 미술시간이 들었다든지, 체육시간이 겹친다든지 어쨌든 그런 저주 받은 날의 등굣길의 풍경을 상상이나 하실 수 있을런지요?(방금 인터넷을 찾아보니 다행히도! 회장님 댁도 5형제시군요!)
다른 날은 꾸물럭대던 언니들이나 동생이 그런 날은 어찌나 잽싼지 살 부러진 우산이나마 장검처럼 꿰차고 나가버리면 참 막막하지요.
부모님들도 이미 나가고 안 계시니 어디다 하소연할 데도 없고, 30년도 훨씬 더 지난 일입니다만 쓰다보니 그 막막함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어쨌든 때때로 막막한 아침을 맞아야 했던 아이들은 자라서 대부분 회장님의 종업원이 되었을테고 그 막막함을 한 자락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은 같은 5형제라도 전혀 다른 세상을 살며 그들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애자’에서 제가 유난히 꽂힌 장면이 있었습니다.
엄마가 병들어 시한부의 삶을 살게 되자 딸내미가 엄마가 운영하던 동물병원을 정리하게 됩니다.
처분할 건 처분하고 실어 낼 짐들도 대충 실어내고 나자 그 병원에 서너 마리의 개가 남겨집니다.
그 병원에서 일했던 이에게 이달치 월급과 퇴직금까지 지급한 후 애자가 묻습니다.

“언니야, 이럴 경우 야들은 우째야 되노?”
“그냥 다들.. 안락사 시킨다”

애자는 냉장고에서 약품을 꺼내 주사기에 재고는 그 강아지들을 끌어안고 한참을 웁니다.
하물며..개한테도 그럽디다.
말을 할 줄 모르니 애원을 한 적도 없는 개한테도 그럽디다.
생산성에 기여를 한 적도 없고 자본을 축적하는데 어떠한 잉여가치도 창출한 적이 없는 개한테도 그럽디다.


쌍용차 사장님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함께살자’던 노동자들을 끝내 내치는 과정에서 여섯명이나 목숨을 잃게 만들었던 쌍용차 사장님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노동시간을 줄이고 임금이나 복지를 줄여서라도 정리해고만은 막겠다던 노동자들 2646명의 생존을 기어이 빼앗았던 쌍용차 사장님은 무슨 마음이었을까요?
그들의 절규와 울부짖음을 헬기소리와 오, 필승 코리아로 무찔러 버렸던 그 사장님은 이겨서 아주 기쁘셨을까요?

 

아시다시피 한진중공업의 임단협이 아직 끝나질 못했습니다.
여름휴가를 넘기지 않는 게 관행이었습니다만 올핸 추석을 넘길 조짐마저 보입니다.
노조간부들은 석 달 째 철야농성중입니다.
부당한 일을 당하면 모여서 고함이라도 지르고 머리를 맞댈 수라도 있는 그들은 차라리 행복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작년 연말 상여금이 아직도 꿩 구어먹은 소식이고 하루가 멀다하고 일자리가 사라지는 하청노동자들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딛는 심정일 겁니다.


2003년. 아직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아니, 기억하신다면 이러실 리가 없을텐데 말입니다.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두 사람이나.. 죽었습니다.
한진중공업에서 청춘을 바친 늙은 노동자들을 굳이 600명이나 자르겠다는 회장님의 방침만 아니었어도, 그들은 지금쯤 부모님의 묘소에 벌초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을 겁니다.
그들을 복직시키겠다는 약속을 회장님께서 지키기만 했어도 그들은 노동조합의 임기를 마치고 오늘 같은 일요일은 개콘을 보겠다는 아이들과 리모컨 쟁탈전이나 벌이며 하냥저냥 나이들어 가고 있겠지요.
600명을 짤라내지 않으면 회사가 곧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습니만 결국 두 사람의 목숨값으로 20년 전에 짤린 노동자들까지 (저만 제외하고!) 복직을 했습니다만 회사는 안 망했습니다.
30억을 들여 식당이 지어지고 복지회관이 지어지고 일방중재조항들이 폐지되고 삼십여년을 가로막아 왔던 불통의 장벽이 그렇게 하나하나 허물어져가고 상식이 들어서는 듯 보였습니다.
불안한 평화는 그렇게 5년이 시한부였습니다.



회장님!
한번 자유의 맛을 본 사람은 다시 노예로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이건 제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어떤 유명한 사람이 한말인데 누군지 기억나진 않는군요.
5년 전. 두 사람이나 목숨을 바쳤던 건 그런 이유였습니다.
해고되고 구속되고 그렇게 싸워가며 우리는 고통만 맛보는 건 아닙니다.
인간이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몸으로 깨치고 그렇게 깨친 자유와 정의에 대한 의지는 목숨보다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그걸 지킬 수 있을 때라야 우리가 인간일 수 있는 까닭입니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77일을 한결같이 외쳤던 것도 그 말일 것이고 그 명쾌한 목소리들이 우리에겐 들리는데 그 말을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들이 그들의 지배자였다는 게 이 시대 노동자들의 비극입니다.
저는 회장님께서 우산이 없어 학교를 못 가는 건 이해를 못하시더라도 이 말만큼은 부디 이해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한진중공업에서 임단협이 길어진다는 건 단순히 날짜의 지루함만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불길한 전조. 혹은 전운..


포항에 진방스틸이라는 공장에서 부당해고에 맞서 1년을 넘게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그 회사를 부산주철관이 인수를 하면서 이 노동자들이 한 번씩 부산으로 투쟁을 하러 오는데 그런 날은 우리 사무실에서 묵어가곤 합니다.
씻을 데도 마땅찮고 누울 데도 마땅찮은 공간에 모기는 들끓으니 얼마나 고역이겠습니까.
며칠 전에도 이들이 다녀갔는데 예순다섯명이나 되는 사내들이 수도꼭지 두 개 달린 남자 탈의실에서 씻을라면 밤을 새워도 못 씻을테니 여자탈의실까지 침범을 했다가 변태로 몰릴까 급했는지 증거를 미처 인멸을 못하고 흘리고 갔습디다.
시커먼, 그것도 한겨울에 신는 군용담요 같은, 그것도 뒷꿈치가 뻥 뚫린 양말.
첨엔 신경질이 나서 씨불씨불 하다가 갑자기 좀 쓸쓸해지더군요.
여자탈의실에 뒹구는 뒷꿈치가 뚫어진 남자 양말처럼.
그들은 그 두꺼운 양말이 뚫어질 때까지 얼마나 헤매고 다녔을까요.
그 양말마저 잃어버리고 맨발인 채로 그들은 또 어디로 갔을까요.
몇 달을 집에 못들어 간 한진중공업 노조간부들도 이 밤 탈의실 구석에서 고랑내 나거나 뚫어진 양말을 그 성긴 손으로 주물주물 빨고 앉아 있겠지요.
뚫어진 양말을 신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양말이 뚫어지도록 일하는 사람들을 종종 적으로 내몰곤 합니다.
그럼 그들은 적이 될 수 밖엔 없을 겝니다.
회장님께서는 선친으로부터 돈과 명예와 권력뿐만이 아니라 그런 유전자까지 물려 받으셨을테니까요.
김 진숙이라는 인간을 직접 본 적도 없으면서 뿔 달린 빨간 괴물로 인수인계 받으셔서 한진중공업에는 범접할 수 없는 혐오동물로 낙인을 찍으셨듯이.


애자’ 마지막 장면에 보니 그 강아지들이 결국 살았습디다.
저는 가슴을 쓸어 내렸습니다.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고 애자 혼자 쓸쓸히 집에 돌아오는 장면이었는데 전 그 장면이 참 따뜻했습니다. 
회장님!
곧 추석입니다.
저는 오늘 외포리 큰언니한테 못 간다고 전화를 하고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다 돌아가셔서 큰언니 큰형부가 저한텐 부모님이고 그분들이 고향에 계셔서 명절 때면 가곤 했습니다.
남동생이 몇 년전 객사를 하고, 비오는 날이면 그 많던 형제들 중 부모님 차례를 모실 형제가 저 밖엔 없어 제가 가야 그나마 부모님 차례라도 지냅니다.
한진노조 간부들, 그리고 일자리를 잃은 한진 하청노동자들, 그들 중에도 고향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겠지요.
제가 그렇다고 철야농성을 함께 하는 것도 아니고 짜달시리 뭐 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냥 미안해서요. 당신들을 이해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 그러니 너무 쓸쓸해하지 마시라.
그거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2003. 김주익 지회장은 크레인 위에서 혼자 추석을 쇴지요.
주익씨 그렇게 가버리고 그게 그렇게 미안하고 부끄럽습디다.
고향에 다녀온 게...

회장님!
며칠 후면 다시 추석입니다.
부디 추석 잘 쇠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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