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09.06.09 14:42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보면서


김석준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1.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23일 자신의 집 뒷산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이웃들과 어울려 보통사람으로 살기를 시도한 첫 번째 대통령의 황망한 죽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유서에서 밝힌 대로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을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는 압박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으로 보인다. 가족 친지들에게까지 확대된 검찰의 망신주기 식 수사와 대다수 언론들의 받아쓰기 식 보도는 도덕성 하나 만큼은 자부해 온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특히 포괄적 뇌물죄라는 혐의는 사실 여부를 입증하기 어려워 공소유지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었음을 감안한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정치 보복적 수사에서 비롯된 일종의 ‘정치적 타살’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2.
아무리 안타깝고 억울한 죽음이라 하더라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국민들의 추모 열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봉하 마을에만 백만이 넘는 조문객이 다녀갔고 전국 각지에 마련된 분향소에도 400만이 넘는 사람들이 문상을 하고 갔다고 한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은 그가 누구보다도 소탈하고 인간미 넘치며 국민들과 소통하는 매력적인 대통령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과 언론의 집요한 공격을 받을 때, 그를 신뢰하고 옹호하기 보다는 그의 도덕성을 의심하고 실망하여 그에게 부정적인 시선을 보냈던 사람들은 그의 죽음 이후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조문 행렬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을 것이다.






한편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는 이명박 정부의 역주행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오직 1%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을 노골적으로 추진하면서 역사를 20여년 이전으로 되돌리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일방통행 식 국정운영은 재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하고 반대했던 사람들조차 그 시절이 차라리 좋았음을 새삼 실감하게 하면서 그의 죽음을 아쉬워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3.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무리 소탈하고 서민적인 대통령이었다고 하더라도 그의 인간적인 매력과 그의 업적은 구별되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서민의 대통령이라고 평한다.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은 그는 분명 서민 출신이자 우리 사회의 비주류였다. 그러나 사법고시를 통과한 그는 잘 나가는 변호사였으며, 몇 번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하더라도 그는 두 번의 국회의원을 지낸 잘 알려진 정치인이었다. 그의 언행과 분위기는 서민적이었을지 몰라도 그가 진정으로 서민이었던 적은 거의 없으며,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추진한 정책 중에서 서민을 위한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권위주의와 지역주의를 타파하려고 하고, 돈 안드는 선거를 실천하기 위한 정치개혁을 시도하는 등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개혁적 성과는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가 핵심 정책으로 내세운 지방 분권과 균형 발전, 부동산 투기 억제 등은 방향은 옳았더라도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추진 주체들의 준비 부족과 역량 미흡 등으로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이라크 파병이나 한미 FTA, 비정규법안 등은 애초에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었다.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수출은 늘어나고 주가도 오르고 일인당 GNP는 늘어났더라도, 지역간 격차와 빈부 격차는 더욱 확대되고 비정규직은 대폭 늘어났으며,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더욱 어려워졌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노무현 정부는 좌회전 깜빡이를 넣고는 우회전을 하였으며, 그 결과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서민의 대통령은 서민들이 피눈물을 더 많이 흘리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4.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그 자신이 주역으로 활약했던 1987년 6월항쟁을 통해 이루어낸 한 시기의 종말을 의미한다.

다시 6월이다.






이제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6월은 ‘불충분한 민주주의’를 만들어내는데 그쳤던 6월항쟁의 6월이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6월은 ‘노동자 서민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6월이어야 한다. 이러한 6월은 노동자 서민들이 떨쳐 일어날 때에만 가능하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랜 굴종의 삶을 떨치고 솟구쳐 오르던 1987년 7-9월 노동자 대투쟁의 함성과 열정이다.





 또 하나 우리가 확실히 해야 할 것은 더 이상 ‘비판적 지지’의 허상이나 될 사람 찍자는 ‘사표 방지’ 심리에 사로잡히지 말고, 노동자들 스스로 정치의 주인이 되어 정치판을 바꾸어나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1 Comment 0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