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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9 14:02

일상의 모든것에서 투쟁하라!

서윤경

부경울 열사회 사무국장




부경울 열사회 사무국장으로 상근활동을 4년째 하고 있다.
활동과 일상에서 많은 것을 배우거나 실망했다. 어느 곳이나 자기 단체 활동의 정당성이나 이유는 명확한데 실천으로 이어가는 길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음을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었인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그래서 몇 가지 생활적 제안을 하고 싶다.


상근을 시작하고 자기 역할을 찾지 못해 헤매었던 나와 당시 사무국장은 서로의 활동과 사고방식의 차이 때문에 갈등이 잦았다. 그 여러 가지 문제는 나의 기본 업무능력의 부족함에서 비롯된 것이 많았다. 예를 들어 회의자료 작성과 결과 정리부분이 정확하지 못해 글자 몇 자를 놓고 씨름을 한다든지, 소식지에 올릴 글을 정리하지 못해 제 때 소식지 발간이 되지 않는다든지 등등이었다.
어느 날 회의 결과에 대해 서로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몇 페이지 되지도 않는 회의 결과를 둘이서 밤을 세워 작성한 적이 있다. 배우는 자의 입장은 그렇다 쳐도 모든게 뻔하게 나와 있는 결과를 한구절 한구절 기역 니은을 가르치듯 해야 했던 전 사무국장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간단한 것을 밤을 새며 가르쳤던, 이유는 무었이었을까?
시간이 흘러 새삼 드는 생각이지만 그 방법밖에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열사회가 잘 운영되게 하려면 필요한 여러 가지 일들과 그 일들에 대한 집행력을 다음 상근자에게 전하기 위해 하나씩 짚어가며 가르치는 사람의 태도는 그 누구도 그냥 넘어간다고 해서 탓할 일 없는 자기 조직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작년 연말 울산 현대미포조선 동지들의 투쟁이 일어나고 그 동지들의 투쟁에 결합하고 있다던 현대자동차 서영호․양봉수 열사회 상근 동지들의 일이다.
어느 현장이든 투쟁과 연대는 일상적인 일이지만 우리 회원단체 동지들의 일이기도 하기에 집회와 현장 선전에 몇 번 결합했다. 매일 아침 8시에 진행했던 출퇴근 선전전, 시장이나 회사 출입구에서 진행했던 저녁 영상전과 거리 공연 등 지역과 현장 노동자들의 연대를 구하기 위해 이들은 체력이 바닥나도록 투쟁현장 주변에서 활동을 했다.
노동조합에서 트럭과 음향기계를 빌리고 상영할 영상을 제작하고 노래와 선전멘트를 만들어 현장조합원들에게 선전을 하고 투쟁기금을 모금하고, 시장 거리에 나가 시민들에게 선전하는 활동들. 그러나 모금함에 모인 돈은 매일 몇 만원 수준이었고 미포조선 투쟁 집회장에 나온 동지들 또한 그다지 많지 않았다. 결과만을 놓고 보면 성과가 그리 크지 않았던 동지들의 투쟁에 내가 감동한 것은 잠도 못자고 체력까지 바닥내 가며 지역의 연대를 만들어 내고자 했던 절박한 마음과 치열함 때문이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이런 동지들이 많다.
자기 역할을 찾아 꾸준히 집회에 참석하고 지역투쟁에 자발적으로 연대하러 다니고 자기 사비를 털어 투쟁기금으로 내어 놓는 동지들을 곳곳에서 보고 배우게 된다. 그들에게서 배우는 건 누군가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실천하는 사람으로써의 양심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 삶의 당연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즘 우리는, 우리를 위해 무었이 가장 옳은 방법인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나은 대안이 나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생활과 투쟁의 곳곳에서 치열함과 성실함으로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이 많은데 그것을 따라 배우지 않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도 활동을 한참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일상의 모든 것에서 투쟁하라!’ 지난 노래패 활동에서 알게 됐던 구호다. 여전히 가끔씩 떠올려보다 잊게 되지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자본을 향한 우리의 투쟁이 더욱더 끈질기고 크게 가려면 투쟁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투쟁은 가끔씩 열리는 집회장이 아니라 우리가 일하는 노동의 공간에서 나 스스로 끊임없이 실천하는 것, 나와 함께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동지들에게 실천에 대한 설득과 격려와 사랑, 이기기만을 위한 동지들과의 언쟁이 아니라 나의 현재와 과거를 반성하는 시간부터이다. 하루에 몇 분 씩이라도 조금씩만 시간을 내어서 나와 우리를 위한 자기반성부터 시작하자. 그렇게 하는 것이 조금 더 많은 동지들이 단결하는 길이며 우리가 좋아하고 사랑했던 열사들의 뜻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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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nikeairyeezy2forcheap.com/ BlogIcon Air Yeezy 2 for sale 2012.06.07 09:5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90년. 제가 첫 징역을 살 때였습니다.
    접견을 오셨었지요.
    보통 변호사 접견은 재판 전날 와서(사실 재판 전날도 안 오는 변호사도 많습디다만)
    재판절차를 일러주고 이빨도 맞추고 하는데 재판날짜와는 아무 상관없는 시기였던지라
    많이 의아했던 만큼 20년 전인데도 이리 생생하네요.
    접견실에 먼저 오셔서 기다리시더군요.
    보통은 재소자들이 한 시간 이상씩 주리를 틀면서 기다리는데.
    요샌 교도소 반찬이 뭐가 나오냔 얘기, 여사에선 뭐하고 노냐는 얘기, 변호사가 해주던 징역살이 얘기, 남사에선 뭐하고 논다는 얘기,
    법무부 시계도 가니까 재밌는 놀이를 많이 개발해서 징역을 잘 깨라는 얘기.
    변호사가 접견을 와선 재판이야긴 한마디도 없이 노닥거리기만 하다 그 더디기로 유명한 법무부시계가 세상에 한 시간이나 흘렀습니다.

    “가야겠네” 일어서시길래 하도 황당해서 물었습니다.
    “왜 오셨어요?”
    “진숙씨 징역살이 힘들까봐 놀아 줄라고 왔지요”

    그리고 당신은 정치권으로 갔고,
    정치권으로 갔다는 건 권력을 탐하는 변절로 규정하는데 한치의 주저함도 없었으니
    변호사비용을 거침없이 떼먹고도 사기꾼의 돈을 떼먹은 것 마냥 일말의 부채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복직하면 갚으마. 유전 발견하면 갚으마. 보물선 찾는대로 갚으마. 막연한 약속이 선임비였던 시절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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