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모순덩어리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라는 이름의 사람들이 얼마나 하찮고 벌레처럼 취급되어 법도, 관계기관도 국민으로서 의무만 강요할뿐 헌법에도 보장된 권리마저도 깡그리 무시되면서 살아야 하는지 민주노조 하기 전에는 정말 몰랐습니다. 우리는 그냥 그랬습니다. 근로조건을 개선시켜보자는 일념하나로, 이렇게 살수는 없지 않느냐, 노조만 만들면 다 될 것이라 굳게 믿으며 그렇게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부당한 해고에 맞서 원점으로 돌리는데만 155일 걸렸습니다. 하지만 아직 단체협약도 없고, 노조 사무실도 없고 복직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각오가 필요하다 조합원들은 알고 있고 또 그렇게 결의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날 방문한 곳은 캄보디아 수도인 프놈펜 외곽에 위치한 도시빈민·철거민들의 마을이었다. 캄보디아 방문 내내 경악을 금할 수 없었지만, 갈수록 심각한 상황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우리는 얼랑깡안마을과 언동마을을 방문했는데, 뽀이뻿의 시골빈민촌에 비해 이곳은 상황이 더욱 처참했다. 배수시설이 제대로 없어서 무릎 높이까지 물이 마을 전체에 차있고, 나무로 대충 지은 집들은 거지촌이라는 느낌이 들만큼 남루했다. 마을 곳곳에 쓰레기가 물에 둥둥 떠다녔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집들이 즐비했다. 파리 모기 같은 해충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물에서 세수를 한다. 집안에 까지 무릎높이의 물이 들어찼다....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에 맞선 현대차 노동자들의 파업을 기억한다.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에 맞선 대우차 노동자들의 파업을 기억한다.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에 맞선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업을 기억한다. ... ... ... 끝도 없이 이어지는 파업의 기억. 년도와 회사 이름만 바뀔 뿐, 보기 싫은 영화를 강제로 반복해서 보는 듯 한 우리네 노동자들의 슬픈 기억이다. 이 슬픈 기억에는 공통점이 있다. ‘자본가들의 방만한 경영,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 부도상황에 내몰린 회사, 이 모든 잘못에 대한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 ‘저항하는 노동자들, 사측의 불성실 교섭, 그로인한 노동자들의 파업, 당연한 듯 보수언론의 왜곡 보도, 이어지는 공권력의 강철군화......’. ‘처절하게 피 흘리는 노동자들......’. 이 낡고 재미없는 기억을 언제까지 반복해서 두뇌에 저장하고 또 저장해야 하나!...
내가 이 나이에 상상도 못한 해고자 딱지가 붙었다. 그동안 나는 힘없고 권력 없는 아줌마이기에 병원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만 했다. 그렇게 평생을 노동자로 살아오면서 제대로 쉴 시간도 없이 빠듯하게 살아왔다. 게다가 아이들 키우고 살림하랴 정신없이 살아온 나에게 여유롭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음의 양식이란 최고의 재산인데도 재산을 저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먹고 살기 위해 일까지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나에게 불명예스러운 해고자란 단어가 아직도 따라다닌다. 해고 되면서 집회도 하고 농성도 하고 1인시위도 하면서, 다른 투쟁에 연대도 다닌다. 우리들에게 찾아올 승리의 그날을 위해서......
캄보디아. 일주일의 연수기간 내내 마음 한구석을 우울하게 만든 나라. 다녀온 지 한 달이 지나 연수 감상문을 적는 이 순간까지 처음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여전히 ‘우울’이다. 빈민촌의 아이들과 어우러질 때는 그렇게도 즐겁다가 이동을 위해 승합차에 오르면 가슴이 뻥 뚫린 듯 멍해지는……. 캄보디아에서의 일주일은 조울증에 걸린 사람마냥 즐거움과 우울의 반복이었다. 그래서인지 돌아와서 사람들이 “재미있는 여행이었냐”고 물을 때마다, “음……. 굉장히 충격적이고, 비참했다. 그래서 참 좋고 즐거운 여행이었다”고 답했다. 우울의 기억을 더듬기가 싫었나보다. 그래서 다이어리에 ‘연수보고서 쓰기’라고 한 달 전부터 적어놓고는 하루하루 미루기만 했다. 사실 지금도 피하고 싶다. 그러나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의 무게를 온통 짊어지고 살아가는, 그러기에는 너무나 작고 어린, 캄보디아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느끼려고 노력하며, 그들과 함께한 기억을 더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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